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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지의 묘생묘사] "그 고양이 물어요!" 그래도 괜찮은 공존

 

 

[노트펫] 일이 불규칙한 탓에 몇 년 만에 겨우 휴가를 맞출 수 있게 된 친구와 세부에 다녀왔다. 물가가 저렴하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리조트를 예약하려고 보니 정말로 저렴했다. 고르기 나름이겠지만 1박에 10만 원도 안 되는 저렴한 리조트도 많았다. 우리는 시내에서 많이 떨어진 조용하고 한적한 리조트를 골랐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오로지 휴양! 먹고, 놀고, 쉬는 것이었기 때문에 교통편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택시를 타고 한참을 들어가 도착한 리조트는, 성수기가 아니라서 그런지 더 한가하고 조용했다. 길에는 강아지가 아주 많았다. 인도와 차도가 제대로 분리되어 있지도 않은 길에서 강아지들은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누워 있고, 느린 걸음으로 총총총 걸어 다녔다. 그들만의 규칙이 있는지 차를 보고도 별로 놀라지도 않는 기색이었다. 차도 강아지가 보이면 슬쩍 속도를 줄여주며 강아지가 느리게 자리를 피하는 걸 기다려 주었다.

 

이 자연친화적인 분위기 속에서 첫날 만나게 된 건 다름 아닌 욕실에 있던 도마뱀이었다. 도마뱀은 우리에게 목격된 이후 가구 틈새로 사라져 버렸다. 동물은 모두 좋아하지만 털 달리지 않은 것은 대체로 질색하는 나는 두려움에 떨며 슬금슬금 벽 눈치를 보고 다녔다. 다행히 도마뱀은 어디로 잘 빠져나갔는지 그날 이후로는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는 오후 느지막이 간식거리를 들고 수영장에 나가 반쯤 누워서 맥주를 마셨다. 이 한적한 리조트에는 거리에 수도 없이 지나다니던 개는 보이지 않았지만, 대신 해가 지기 시작하자 어딘가에서 고양이들이 나무 뒤로 빼꼼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나와 달리 고양이에 별 관심이 없는 친구가 건오징어를 먹고 있었는데, 고양이들은 슬금슬금 그쪽으로 다가가 꼬리를 말고 앉아 기다렸다. 친구는 고양이가 안 보이는 척해봤지만 얼마 못 가서 항복하고 말았다. 몸에 좋을 리 없지만 고양이들이 하도 말라서 건오징어를 약간 나눠주자, 고양이들은 희미하게 장착하고 있던 경계심도 없애버리고 고개를 들이밀었다.

 

어두워진 수영장에서 고양이들과 노닥거리고 있을 때 저쪽에서 스탭이 나타나 무언가 외쳤다. 무슨 말인지 몰라 당황하다가 잘 들어보니 “고양이 물어요!” 하고 주의를 주는 것이었다. 위험하니 조심하라는 스탭의 권고를 고양이들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여전히 우리의 손에만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손님들에게 주의를 주면서도 딱히 고양이를 내쫓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여전히 고양이가 붙어 있는 채로 스탭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유쾌한 기분으로 방에 돌아왔다.

 

 

 

고양이는 그곳의 나무, 바다, 풀, 코코넛 열매…와 마찬가지로 거기에 있었다. 그것들은 우리의 호불호와 상관없이 제 자리에서 살아가고 있는 자연의 일부라고 봐야 할지도 모른다. 썩 내키지는 않지만, 도마뱀도 마찬가지다. 이런 여행지에서 동물을 만나면, 제자리에 있어야 할 것들이 제자리에 있다는 묘한 안도감 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가장 자연스럽고 당연한 풍경을 목격하는 기분이랄까. 그리고, 그 순간마다 집에서 기다리는 내 고양이들이 문득 더 그리워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박은지 칼럼니스트(sogon_abou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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