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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지의 묘생묘사] 누가 누구를 길들이는 걸까?

 

[노트펫] 결혼했을 때 샀던 베개 솜이 납작하게 숨이 죽었다. 새로 솜을 사러 마트에 갔더니 요즘에는 ‘경추 베개’라는 것이 나오는 모양이었다.

 

일반적인 솜처럼 통통하게 부풀어 있는 것이 아니라 베개 가운데가 쏙 들어가 목을 괼 수 있는 형태의 베개였다. 마침 할인 행사를 하고 있기에 그걸 사와서 솜을 갈아 끼웠다.

 

그랬더니 안타깝게도(?) 그 베개가 아리의 마음에 아주 쏙 든 모양이었다. 아리는 처음에는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면 베개를 침대 삼아 하루 종일 낮잠을 잤는데, 이제 밤에도 슬금슬금 내 베개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가운데가 오목하게 들어간 그 베개는 고양이의 취향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 모양이었던 것이다. 결국 요즘 나는 밤새 아리와 베개를 반씩 나누어 베고 잔다.

 

이 침대 위의 신경전은 사실 고양이들이 집에 온 순간부터 끊임없이 이어졌다. 남편은 침대 위에서 다리를 쭉 뻗지 않고 비스듬하게 누워 잤다. 그쪽 발치에 항상 제이가 동그랗게 누워 자기 때문이다.

 

사실 신경전이라고는 해도, 사람 쪽이 항상 고양이를 위해 자리를 양보하게 되는 셈이다. 그 자리에서 자겠다고 네 발바닥 젤리로 내 머리를 밀어내는 고양이를 어떻게 이기랴.

 

사람 두 명과 고양이 두 마리가 모두 모여들어 잠드는 침대는 조금 복작거리지만, 우리에게는 나름대로 익숙한 잠자리가 되었다. 가끔 여행을 가서 호텔이나 펜션에서 지낼 땐 동물의 흔적 없는 드넓은 침대가 도리어 어색할 정도다.

 

 

지난 주, ‘알쓸신잡’에서 유시민 작가가 진도개들을 보고 와서는 문득 이런 의문이 생겼다는 말을 했다. ‘사람이 개를 길들인 걸까, 개가 사람을 길들인 걸까?’ 개가 사람에게 해주는 거라곤 아침, 저녁으로 현관문 앞에서 반겨주는 것밖에 없는데 사람들이 개를 입히고 먹이고 돌봐주는 모습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하기야 우리 집만 봐도 그렇다. 애초에는 둘 다 길에서 지내던 아이들인데, 집으로 데려와서 애지중지 보살피고 있다. 사료와 영양제를 챙겨 주고, 몸에 이상이 있으면 병원에 데려가고, 날씨가 추워져서 바닥에 러그를 깔아줬고, 따뜻한 잠자리를 마련해준다.

 

그 대가로 고양이에게 바라는 것은 그저 건강한 것, 하나뿐인 것 같다. 제이와 아리가 어느새 나를 고양이를 보호하는 집사로 길들여버린 걸까?

 

하지만 나는 기꺼이 고양이에게 길들여져도 좋다. 어린왕자에서는 길들임에 대해 ‘네가 오후 네 시에 오면 나는 두 시부터 행복해지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동물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그냥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서로를 길들여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집에 돌아오면 현관 앞으로 쪼르르 달려 나오고, 내가 거실에 앉아 있으면 살포시 다가와 등을 붙이며 눕고, 때로는 야옹거리며 간식을 조르기도 하는 그 모습은 이제 나에게 너무 당연하고 익숙해진 풍경이다. 달리 무엇을 해주지 않아도, 그 모습을 매일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미 행복해지고 만다.

 

박은지 칼럼니스트(sogon_abou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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