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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지의 묘생묘사] 내게는 뭐든 허락하는 고양이

 

[노트펫] 보통 고양이들이 싫어하는 건 몇 가지로 정해져 있다.

 

물론 걔네들은 사람이 억지로 하려고 하는 건 대체로 다 싫어하는 것 같긴 하다.

 

자기가 무릎 위에 올라와 눕는 건 되지만 내가 들어서 무릎 위에 앉히면 안 된다, 그거다.

 

우리 집 고양이는 물론 사람까지 포함한 온 가족 서열 1위 '아리'는 고양이가 싫어한다고 알려져 있는 건 전형적으로 다 싫어한다. 발톱 깎기, 목욕하기, 양치질하기, 안아 드는 것도 물론이다.

 

하지만 정작 내가 누워 있으면 꼭 가슴팍으로 올라와 뱃살에 대고 야무지게 꾹꾹이를 하거나 그 위에 누워 자리를 잡는다. 으으, 얼마나 무거운데….

 

반면 '제이'는 내 손으로 하는 거의 모든 게 다 허용된다.

 

싫은 소리는 좀 내지만 격렬하게 거부하거나 경계하는 기색은 전혀 없다. 품에 안긴 채 얌전히 발톱도 다 깎고, 입 안에 치약 묻힌 손가락을 집어넣거나 칫솔질을 해도 화내지 않는다.

 

 

아리는 안으면 힘을 주며 몸을 비트는데, 제이는 어미고양이에게 목덜미를 잡힌 새끼고양이처럼 몸을 축 늘어뜨린다.

 

누구에게나 그러는 건 아니고, 수의사 선생님이 쓰다듬으면 기가 막히게 알고 제법 하악질을 한다.

 

아리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하겠다는 고집쟁이 첫째딸 같고, 제이는 삐죽거리면서도 엄마 말 잘 듣는 어린 막내딸 같달까? 그런 제이가 나는 가끔 짠하다.

 

생후 한 살도 안 되었을 때부터 내 손에 들려 병원에 다니고 매일 붙잡혀 약을 먹다 보니 내 손에 의해 무언가를 당하는(?) 상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 것 같기도 하다.

 

그 와중에 의사 선생님은 악당 취급을 받게 되었고(죄송합니다), 진료대 위에 올라간 제이에게 나는 그나마 믿을 수 있는 구석으로 여겨졌는지도 모른다.

 

제이는 실제로 나에게 목숨을 맡긴 것이나 다름없었다. 림프종 판정을 받고 당장 호흡조차 가빴던 제이의 운명은 오로지 나의 선택에 달려 있었다.

 

내가 뭐라고, 한 생명의 갈림길을 앞에 두고 선택을 해야만 했던 것이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참 무겁고, 미안하고, 아찔했다.

 

 

제이에게는 내가 온 세계였다. 그 순간 삶의 유일한 동아줄이었을지도 모른다. 낯선 병원의 수의사 선생님 손길에서 도망쳐서 자꾸만 내 품으로 파고 들려고 했던 제이의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어쩌면 하나의 세계가 뒤바뀐 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의 첫 고양이, 제이를 처음 키우기 시작했을 때는 나도 고양이는 사람에게 치대지 않고 도도하다는 막연한 편견이 있었다. 하지만 틀림없이 고양이는 나를 가족이나 친구, 혹은 친근한 그 무엇으로 대하고 있었다.

 

내가 무슨 이유 때문엔가 울적한 마음으로 거실 소파에 기대어 앉아 있으면, 제이가 내 곁으로 다가왔다.

 

아무 말 하지 않고(당연하지만) 옆에 앉아 물끄러미 나를 올려다보는 제이를 보는 것만으로 나는 더할 나위 없는 위로를 받았다. 오히려 고양이 제이의 울타리 안으로 내가 들어간 듯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교감이 우리 사이에는 있었다. 제이를 만나서 나는 조금 어른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예전에 강아지를 키울 때도 그런 경험을 했지만, 종도 다르고 덩치도 자신보다 훨씬 큰 나를 믿고 약한 목덜미나 배를 그대로 맡기는 것이 참 놀랍고 경이롭게 느껴질 때가 있다.

 

양치하거나 약을 먹이려고 입 안에 손을 집어넣어도 깨물지 않고 참아주는 제이의 마음은 나를 나름대로 보호자로 여기고 있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비록 싫은 행동을 해도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으리라는 믿음, 그게 참 고맙다. 

 

박은지 칼럼니스트(sogon_abou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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