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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와 빠루] 스피츠 빠루가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밥을 먹은 이유

[나비와빠루] 제 20부 

 

늑대들. 사진 픽사베이
늑대들. 사진 픽사베이


[노트펫] 밥을 급히 먹는 사람에게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이 해치운다.”라고 한다. 마파람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부는 남풍(南風)이다. 필자 같이 바닷가에서 자란 사람에게는 정겹고, 익숙하다. “게눈 감춘다.”는 빨리 사라진다는 뜻으로 요즘 말로 순삭(瞬削)에 가깝다.

 

순삭은 순간(瞬間)과 삭제(削除)의 합성어로 온라인 쇼핑에서 상품이 빨리 완판 되는 경우에 사용된다. 인터넷 게임을 할 때 상대가 버티지 못할 정도로 마구 공격을 퍼부어 삭제시킬 때 종종 쓰인다.

 

게는 본능적으로 남풍이 불면 태풍(颱風) 같은 큰 바람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걸 안다. 그래서 빠른 속도로 땅 구멍으로 숨는다. 강력한 열대성 저기압인 태풍은 필리핀 인근 해양에서 주로 형성되어 동북아시아 쪽으로 북상한다. 속담은 게의 진지한 생존 본능을 기반으로 한다.

 

내가 어릴 시절 우리집에 키웠던 스피츠 빠루는 속담 속 게처럼 밥을 주면 매번 급히 먹었다. 그럴 때면 할아버지는 “오늘도 우리집에 마파람이 분다.”고 했다. 빠루는 결코 굶은 적이 없다. 동물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어머니는 가족들의 밥을 챙기기에 앞서 늘 개와 고양이부터 먼저 챙겼다.

 

ⓒ노트펫
1970년대 어머니가 빠루와 나비의 밥을 만들었던 부엌도 사진과 비슷한 형태였다. 2021년 7월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

 

그래서 빠루가 왜 그렇게 급하게 밥을 먹는지 궁금했다. 의문에 대한 답은 손자에게는 만물박사(萬物博士) 같이 보였던 할아버지의 몫이었다. 마치 철학자처럼 설명해주셨다. 

 

필자의 아버지는 당시 다른 아버지들처럼 새벽 별을 보고 출근해서, 저녁에 별을 보고 퇴근했다. 요즘은 주4일제까지 논의되지만, 1970년대는 주6일제가 대세였다.

 

일요일이 되면 아버지는 하루 종일 주무셨다. 낮이고, 밤이고 주무셨다. 그렇게 해야 월요일 다시 일할 수 있었다. 여섯 가족을 부양하는 가장의 삶은 늘 피곤한 것이었다. 그래서 필자의 어린 시절 할아버지가 아버지 대신 실질적인 아버지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빠루가 밥을 빨리 먹는 문제에 대한 할아버지의 접근법은 육식동물과 초식동물의 근원적 차이에서 출발했다.

 

개는 늑대의 후손이다. 기본적으로 다른 동물을 잡아먹어야 살 수 있는 육식동물이다. 반면 초식동물은 비만 적당히 오면 잘 자라는 풀이나 나뭇잎을 먹는다. 그러니 가뭄이 들어 식물이 다 죽지 않는 이상 먹을 것 때문에 걱정할 일은 별로 없는 것이다.

 

ⓒ노트펫
풀을 뜯는 톰슨가젤 무리, 2017년 12월 플로리다 라이언 컨트리 사파리에서 촬영

 

육식동물은 다른 동물을 사냥하거나 죽은 사체를 발견해야지 배를 채울 수 있다. 그래서 초식동물에 비해 육식동물은 먹을 것에 대한 열망이 크다. 배를 채울 수 있는 식사꺼리가 생기면 남에게 빼앗기기 전에 빨리 그것도 최대한 먹는 게 본능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큰 틀에서 설명하던 할아버지는 범위를 빠루로 좁혔다. 귀엽고 예쁜 빠루도 그 속성은 육식동물이다. 그러니 먹을 것이 있으면 빨리 먹는 게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고 정해진 양보다 더 많은 밥을 주면 안 된다. 과식하면 살이 쪄서 빠루의 건강에 좋지 않다.

 

할아버지는 매일 빠루의 건강을 확인했다. 빠루 전용 빗으로 전신을 꼼꼼히 빗질하며 피부 상태를 점검했다. 밥을 많이 먹는 빠루가 살이 찌지 않도록 산책도 점심 때마다 시켰다. 할아버지는 개를 어떻게 관리하는 게 좋은 것인지 매일 행동으로 손자에게 교육시킨 셈이다.  


*동물인문학 저자 이강원(powerranger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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