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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과 고양이

[노트펫] 고양이는 추위를 많이 탄다. 겨울만 되면 본능적으로 조금이라도 더 따뜻한 곳을 찾는다. 그래서 겨울 칼바람을 작은 체구로 맞아야 하는 길고양이들에게 최고 명당자리는 햇살이 환하게 비춰지는 곳이다.

 

지난 주말, 동네 공원을 한 시간 정도 빠른 속도로 산책했다. 그리고 언제나 그런 것처럼 공원 옆 작은 커피숍을 찾았다. 개인적으로 하루 한 두 잔 정도 커피를 꼭 마시는 커피 매니아다.

 

커피를 고르는 기준은 딱 하나다. 기본적인 식습관과도 비슷하다. 소금이나 양념의 맛이 강한 음식을 싫어한다. 그래서 재료 본연의 맛을 즐긴다. 그런 습관은 커피에도 이어져서 원두 본연의 맛을 즐긴다. 마시는 커피는 아메리카노 딱 하나다.

 

우유를 타거나, 크림을 첨가하거나 설탕을 넣은 커피는 누가 사준다고 해도 정중하게 거절한다. 그런 커피는 마셔도 뒷맛이 개운하지 않기 때문이다.

 

커피숍을 고르는 기준도 이와 비슷하다. 북적이는 커피숍보다는 그렇지 않은 곳을, 대형 체인점보다는 개인사업자가 하는 커피숍을 좋아한다. 그런 조건에 딱 맞는 커피숍에서 김이 나는 아메리카노 한 잔을 즐기는 게 인생의 가장 호사다.

 

고양이와 커피는 둘 다 은은하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2018년 10월 촬영

 

커피는 영혼을 은은하게 정제시키고 맑게 해준다. 그래서 한 잔만 마셔도 세상 모든 근심을 잊게 하는 술과는 근원적으로 다르다. 술이 사람에게 망각(妄覺)을 선물한다면 커피는 차분한 현실을 선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업무를 시작하기 직전의 아침 커피 한 잔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물론 개인적인 견해일 뿐이며 과학적인 근거는 없는 얘기다.

 

그런데 커피의 가치는 굳이 마셔야만 발휘되는 게 아니다. 놀랍게도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만 있어도 그 효과는 이미 작동한다. 손바닥에 전하는 커피 한 잔의 온기와 코끝으로 전달되는 향기는 벌써 사람의 몸과 마음에 그 효과를 미치기 때문이다.

 

겨울 산책은 묘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전신운동이기 때문에 몸에 열을 발생시켜서 온몸에 온기를 돌게 해준다. 하지만 산책을 마치고 잠시라도 앉아있으면 금방 열이 식으며 약간의 한기까지 느끼게 된다. 그럴 때는 몸과 영혼을 달래줄 한 잔의 아메리카노가 절실히 필요하다.

 

그 날도 그랬다. 동네 커피숍에 앉아서 커피 한 모금을 마시며 가게 밖을 보았다. 땀이 식으며 느꼈던 한기는 눈 녹듯이 사라졌다. 바로 그 때 낯선 길고양이 한 마리가 가게 문 앞에서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애묘가들이 말하는 식빵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집 앞 인양 고양이는 여유를 부렸다.

 

커피숍 현관 앞에 앉아있는 길고양이, 2020년 2월 촬영


커피숍 주인 말로는 이번 겨울 내내 그러고 있었다고 했다. 길고양이 입장에서는 햇살 따스한 곳을 아지트로 삼은 셈이다. 생존에 필요한 최적의 장소를 선점한 것이다. 운이 좋은 날이면 착한 가게 주인에게서 고양이는 신선한 물과 약간의 간식도 얻어먹었던 것 같았다.

 

작은 커피숍,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 귀여운 고양이 한 마리, 행복과 여유가 넘치는 아무 것도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주말 오후였다.  

 

이강원 동물 칼럼니스트(powerranger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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