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다 미리의 책을 읽다가 문득 공감하며 깨달았다.
누군가 계속해서 남의 험담을 하는 것이 듣기 싫은 이유는 ‘너는 이런 이유로 나를 화나게 하지 않겠지?’라는 무언의 압력이 작용하기 때문인 것 같다.
누군가에게 개인적인 취향을 털어놓기 힘든 이유도 비슷한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이러쿵저러쿵 남의 평가를 듣고 싶지 않아 조심스러워진다. 외부의 견해를 받아들일 때, 그것이 일종의 폭력이 되는 경우는 종종 생긴다.
‘이거 좋던데’와 ‘난 별로인데’가 부딪쳤을 때 대개 ‘별로’ 쪽이 미묘하게 우위를 점한다는 사실은 이상한 일이다.
무언가를 비판한다는 사실에 대해, 그 문제에 대해 상대적으로 타당하며 합당한 견해를 드러낼 수 있는 것이라고 우리는 자주 착각한다.
다양한 의견을 듣고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하고 기분 좋게 깨닫는 것과, 상대로부터 무언가 압력과 오만이 느껴지는 것의 언어적 차이는 참 미묘하지만 감정적 격차는 엄청나다.
다른 이의 삶에 대해서 섣불리 판단하지 않으려 한다.
부럽다는 마음도, 불쌍하다는 마음도, 남의 고통에 대해 공감하는 것 역시 주의하려고 노력한다.
다른 이에게 손가락질을 할 때 자신을 돌아봐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다른 이를 불쌍하게 여기는 데에도 스스로의 자격을 돌아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박은지 <흔들리지마 내일도 이 길은 그대로니까>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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