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펫]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우리 국민이 데리고 입국한 반려묘가 검역증이 없다는 이유에서 추방되거나 안락사할 처지에 놓였습니다.
러시아의 침공 속에 우크라이나가 검역증을 발급하지 않고 있고, 주 우크라이나 한국 영사관에서 협조를 요청했지만 검역당국은 규정에 입국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며 고양이의 입국을 불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전쟁 개시 이후 최근 입국할 때까지 폭격을 피해 방공호를 오가는 생활을 두 달 여 동안 하면서도 항상 함께했던 유일한 가족이었던 고양이. 해당 국민은 윤기라는 이름을 가진 이 고양이에 대해 국내에서 검역절차를 진행할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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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8일 국내 매체들이 우크라이나 국제의용군으로 참전한 해군특수전전단 출신 이근 전 대위 측 근황을 소개한 기사들의 제목입니다.
키이우 현지에서 우크라이나 시민들의 전쟁 속 일상을 전하던 '교민 유튜버 모지리'의 유튜브 영상이 출처입니다. 유튜버 모지리가 전한 소식은 이후에도 국내 매체가 생생한 키이우 현지 소식을 전할 때 활용하는 취재자료가 됐습니다.
모지리 채널을 운영하는 올해 마흔의 장모씨는 지난해 5월 여행 목적에서 우크라이나에 들어갔다가 현지 여성을 만나 정착할 꿈을 꾸게 됐고, 올 1월 1개월을 갓넘은 고양이를 입양해서 함께 키우게 됐다고 합니다. 이근 전 대위처럼 국제의용군으로 참전한 무단입국자가 아닙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위협이 높아지던 시기 장씨는 미래를 약속한 여자친구와 고양이를 지키겠다는 생각으로 키이우에 남기로 했습니다. 고양이가 너무 어린 탓에 한국에 들어오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전쟁이 터지고 여자친구와 떨어져 지내게 되면서 고양이와 단둘이서 키이우 생활을 이어가게 됐습니다. 여자친구는 계엄령이 내려진 키이우에서 생활하기 위해 러시아의 침공 전날 신분증을 가지러 키이우 외곽에 있는 본가에 갔다가 폭격에 길이 끊기면서 돌아오지 못하게 됐다고 합니다.
침공 초기 러시아의 기세가 등등하던 때, 낮에는 아파트에 머물고, 밤에는 방공호에서 지내야 하는 생활이 한동안 계속 됐습니다. '윤기'라는 이름을 지어준 고양이는 늘 함께였습니다. 윤기의 첫 외출도 방공호였다고 합니다.
장씨는 전쟁 개시 한 달 뒤 유튜브 채널을 열고, 현지 소식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영상에는 침공 초기 함락 위협에 시달리는 키이우 시민들의 불안함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장씨는 현지에서 자원봉사와 동물보호활동을 하고, 또 이렇게 현지 소식을 전하며 지내왔는데요. 지난달 신변에 변화가 생겨 일단 귀국을 결심하게 됐습니다.
전쟁 뒤 떨어져 지내던 여자친구와 연이 끊어지게 된 것이죠. 러시아가 모스크바호 침몰(러시아는 폭발사고라고 주장하고, 우크라이나는 격침시켰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을 계기로 키이우에 미사일 공격으로 공세를 재개하면서 생명의 위협도 높아졌습니다.
한국계 미국인 구호활동가의 도움 속에 키이우를 벗어나 며칠 만에 국경 도시 리비우에 도착한 장씨. 아기띠를 한 것처럼 윤기를 가슴에 안고 지난 3일 국경을 넘었고, 이틀간 헝가리에 머물다 지난 5일 인천공항으로 입국했습니다.
장씨는 원래 1년쯤 있다가 한국에 다녀갈 생각이었다는데요. 윤기를 한국에 데려가기 위해서는 어떤 예방접종과 서류들이 필요한 지도 미리 파악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렇지만 전시 상황에서 서류들을 챙기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또 발급 자체를 해주지 못하고 있는게 전쟁을 치르고 있는 우크라이나 현지의 사정입니다.
폴란드, 헝가리, 슬로바키아, 루마니아 등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댄 EU 국가들은 러시아의 침공 이후 국경으로 우크라이나 피난민이 몰려들자 동물 검역을 면제해 반려동물과 함께 입국할 수 있도록 특별조치를 취해줬습니다.
남부 항구도시 오데사에서 피난한 70대 우크라이나 할머니가 함께 데리고 나왔다가 루마니아에서 헤어진 반려견을 아일랜드에서 재회한 것도 EU 국가들의 특별조치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장씨가 윤기를 데리고 헝가리에 입국할 때는 물론 떠날 때에도 검역서류들은 필요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헝가리 검역당국자 역시 다른 EU 국가로 동물을 데리고 가는 것처럼 우리나라도 검역 서류들이 필요치 않으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라는게 장씨 생각입니다.
당연히 입국하면 윤기를 데리고 부산의 본가로 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장씨는 입국 당일 인천공항 영종도 계류장에 혼자 두고 공항을 나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러시아의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에서 국내에 들어온 반려동물은 윤기가 처음이라고 합니다. 첫 케이스여서 시간이 오래걸리나보다 했으나 기다림 끝에 들은 것은 소위 검역증이라고 부르는 동물 건강 증명서(animal health certification)가 없어 윤기는 입국할 수 없다는 통보였습니다. 다시 데리고 나가라는 의미였죠.
동물 건강 증명서(animal health certification)는 사람으로 치면 신분증과 유사한 기초서류입니다. 검역당국에서는 항체가 형성 등 여타 미비한 검역절차는 진행가능하지만 윤기처럼 아예 신분증 자체가 없는 경우에 대해서는 규정이 없다며 입국 거부 결정을 내렸다고 합니다.
외교부의 협조 공문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장씨는 윤기에 대해 입국 거부 결정이 내려지자 주 우크라이나 한국 영사관 측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이에 영사관 측에서 루마니아 대사관을 통해 현지 사정을 감안해달라는 공문을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보내줬습니다. 하지만 검역본부는 여전히 규정에 없다는 이유를 들어 난색을 표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러시아의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 동포나 가족으로서 국내 입국한 적이 있는 사람의 경우, 동포 입증서류 없이 과거와 동일한 자격으로 비자를 발급해주고 있습니다. 입국한 사례가 없더라도 동포라는 것만 입증되면 3년간 체류가 가능한 단기사증을 발급해주고 있습니다. 국내에 장기 체류한 우크라이나인의 가족의 경우에도 비자 발급 절차가 간소화됐습니다.
하지만 동포나 비자를 발급받은 우크라이나인의 가족이 함께 데리고 들어오는 동물에 대해서는 예외 규정이 마련되지 않은 셈입니다.
윤기는 현재 추방 대기 상태로 계류장에 있습니다. 국내에 들어오려면 다시 해외에 나갔다가 수개월 간 지내면서 검역서류를 갖춘 뒤에 가능합니다. 추방당하는 경우 계류비용과 항공비를 누군가 부담해야 하는데요. 만일 해외로 나가지 않는다면 윤기는 최장 2개월간 계류장에서 지내다 안락사처리됩니다.
장씨는 "한국의 가족이 그냥 두고 오라고 했을 때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던 윤기"라며 "키이우의 절망을 함께 견뎌낸 윤기와 절대 헤어질 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의지와 달리 형편이 넉넉치 못한 것이 또한 장씨의 현실입니다.
검역을 담당하는 농림축산검역본부 관계자는 "장씨의 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가고 안타깝다"면서도 "가축전염병예방법상 수입 동물은 검역 증명서를 구비하지 않은 경우 반송하거나 폐기한다는 조항을 바꾸지 않고서는 입국절차를 밟을 수 없는 형편"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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