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펫] 짝사랑의 끝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끝내 이루어지지 못하고 마음을 접어야 하는 결말, 또 하나는 떨리는 고백 끝에 마침내 그의 사랑을 차지하는 결말.
보답을 바라고 시작한 사랑은 아니지만, 일방적으로만 키워나가던 사랑을 마침내 돌려받는 순간에는 행복함을 넘어 짜릿함마저 느껴진다.
마음이 가는 고양이와 묘연을 맺는 과정도 묘하게 짝사랑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
집사로서 고양이를 처음 키우면서 짝사랑이 결실을 맺은 듯 가장 행복한 순간이 있다면 뭘까?
새끼 고양이를 입양했을 땐 서로의 세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익숙해지는 행복이 있다면, 성묘를 입양했을 땐 단연 고양이가 처음으로 마음을 열었다는 생각이 드는 그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 기간은 물론 고양이마다 다를 것이다. 일주일이 될 수도, 1년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마치 내가 쏟은 짝사랑을 보상받은 것처럼 고맙고 벅찬 순간이 언제쯤인가 반드시 온다.
특히 새끼 고양이에 비해 성묘는 낯선 환경에서 낯선 사람과 적응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유기묘로 길 생활을 하다가 새끼까지 낳았던 둘째 아리는 약 2-3살로 추정되는 시기에 우리 집에 오게 됐는데, 처음에는 사람의 기척만 느껴져도 후다닥 침대 아래로 숨곤 했다.
머리를 쓰다듬는 것까지는 허용하고 발라당 몸을 뒤집기도 하면서, 그렇게 무방비상태일 때 사람 손이 가까이 가면 다시 잽싸게 몸을 피했다.
여기는 길 위와 달리 이제 아무도 해를 끼치지 않는 안전한 우리 집인데, 그래도 몸에 밴 경계심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아리가 배를 뒤집고 발라당 누워 있을 때 사람이 그 곁을 지나다녀도, 배를 쓰다듬어도, 심지어 어디서 꽝 하고 큰 소리가 나도 아리는 별로 놀라지 않게 되었다.
우리 집에서 겁낼 만한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제는 알게 된 것처럼.
그 안정적인 변화를 지켜보는 것은 집사로서 무척 행복한 일이었다.
보호소에서 몇 년을 보내고 우리 집에 오게 된 셋째 고양이 달이가 소파 밑에 들어가 숨죽여 눈만 깜박이고 있던 입양 첫날, 그래서 나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달이도 어쨌든 익숙하게 지냈던 보호소 공간을 떠나 낯선 집에 왔으니 모든 게 당황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우린 이제 가족이 된 거고, 너도 그게 무슨 의미인지 곧 알게 될 거야. 그저 그렇게 조용히 마음속으로 말해주었다.
낯선 집에 처음 온 날 대부분의 고양이들이 구석진 곳을 찾아 숨는다.
걱정이 되더라도 억지로 꺼내거나 들여다보지 말고, 조용히 적응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것이 좋다.
소파 밑의 좁은 공간에 큰 몸집을 구겨 넣고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는 달이가 마음에 걸렸지만, 근처에 밥과 물, 화장실을 놔주고 첫날밤을 조용히 보냈다.
지금까지 우리 집에 입양 혹은 임보로 거쳐간 고양이들은 첫날밤에 주변에 사람이 없으면 조용히 사료 몇 알이라도 아그작 아그작 먹은 흔적이 남아 있었는데, 달이는 소파 밑에서 한 걸음도 나오지 않은 듯 다음날 아침까지 아무런 흔적이 없었다.
밥은 먹어야 하는데, 며칠씩 굶으면 안 되는데, 하는 안타까운 마음에 츄르를 겨우 반쯤 먹였다.
그렇게 아침저녁으로 밥도 안 먹고 츄르만 할짝이다 2, 3일쯤 지났을까?
한밤중에 거실에서 혼자 컴퓨터를 하고 있는데 뒤에서 소심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달이가 소파 밑에서 슬금슬금 얼굴을 내밀고 있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내가 못 본 척 고개를 돌리니 달이는 발톱 소리를 내면서 걸어 나오더니 거실을 한 바퀴 아주 천천히 돌아보았다.
슬슬 적응할 눈치가 보여 나는 안 보는 척하면서 내심 안심했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달이는 내가 걷지도 못할 정도로 찰싹 달라붙어 다리에 몸을 부비고 발라당 드러눕는 반전 면모를 선보였다.
하루 만의 잽싼 태세 전환에 이번에는 내가 어색하게 웃었다.
우리가 서로 눈을 마주보는 것으로, 또 말소리로 마음이 통하게 될 날은 아직은 멀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달이가 우리 집에서 두 집사를 만나고, 비로소 그 묘연의 가느다란 실이 처음 연결된 순간이 온 것 같다.
첫 고비를 넘겼다는 사실이 큰 선물을 받은 듯 고맙고 기뻤다.
박은지 칼럼니스트(sogon_about@naver.com)
회원 댓글 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