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병찬 과학번역가] 북극에 서식하는 길이 4센티미터 짜리 늑대거미가 북극의 기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지도 모르겠다.
늑대거미 |
"이 매복에 능한 공격적인 거미는 기온이 상승함에 따라 식성이 바뀌어, 곤충을 잡아먹는 대신 자기들끼리 서로 잡아먹게 된다. 그런데 그들이 잡아먹는 곤충들은 온실가스를 내뿜는 균류를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결과적으로, 이 거미들은 북극의 온실가스를 간접적으로 감소시켜, 북극지방의 기온을 (기후변화 전문가들이 예상하는 수준보다) 낮게 유지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상은 지난 23일 발표된 한 논문의 요점이다.
"이번 논문은 지구온난화가 특정 지역에 미치는 영향을 예측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보여준다"라고 클레어몬트 매케나 칼리지(캘리포니아 소재)에서 기후변화의 생태적 영향을 연구하는 세라 길먼(생물학)은 논평했다.
"연구진의 결론은 그럴 듯해 보인다. 그러나 늑대거미들의 식성이 바뀌는 이유를 알아내기 전까지, 소규모 실험 결과를 북극 전체에 확대 적용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라고 그녀는 덧붙였다.
늑대거미과(Lycosidae)에 속하는 늑대거미는 북극에서 가장 풍부하고 지배적인 포식자다. 총 중량으로 따지면, 그들은 알래스카 일부 지역에 서식하는 회색늑대의 약 80배에 달하는 바이오매스를 자랑한다.
그들의 주요 먹이는 길이 0.6센티미터의 톡토기(springtail)인데, 몰래 접근하여 기습하는 것이 주특기이다. 톡토기는 더듬이가 있는 곤충으로, 토양에 사는 균류를 먹고산다. 그런데 이 균류들은 분해되는 식물과 동물을 섭취하여 이산화탄소나 메탄가스와 같은 강력한 온실가스를 방출한다.
늑대거미가 기후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워싱턴 대학교의 아만다 콜츠(생물학)가 이끄는 연구진은 알래스카 툴릭에 있는 빙하로 가득 찬 브룩스레인지 산맥의 기슭에 캠프를 설치했다.
"이끼로 뒤덮인 질척질척한 언덕 위를 걷고 거대한 모기를 피하며, 24시간 내내 햇빛이 비치는 알래스카 여름의 스케줄을 소화하다 보니, 만화영화 『공룡시대』가 떠올랐다"라고 그녀는 회고했다.
연구진은 수 주 동안 바위와 통나무 밑에서 수백 종(種)의 늑대거미를 수집하여, 30개의 직경 1.5미터짜리 원형 울타리 안에 넣었다. 모든 울타리에는 각각 다른 마릿수의 거미를 넣었고, 그중 절반에는 온난화 효과를 모방하기 위해 온도가 약 2°C 높은 방(房)을 설치했다. 그리고는 14개월 후 다시 돌아와, 실험적인 생태계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를 확인했다.
연구진은 "거미가 많은 곳일수록 톡토기가 많이 잡아먹힐 테니, 톡토기의 수가 줄어들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었는데, 통상적인 온도의 울타리 안에서는 이 가설이 성립되었다. 그러나 인공적으로 온도를 높인 울타리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거미가 많은 곳일수록 톡토기의 수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고, 그 차이는 '균류의 감소'와 '분해된 식물성 물질의 감소'로 귀결되었다. 이는 이론적으로 "온도가 상승하면 톡토기의 개체수가 증가하고, 이로 인해 톡토기의 균류 섭취가 증가하여, 최종적으로 온실가스가 적게 배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연구진은 이상의 연구결과를 정리하여 7월 23일 《미국학술원회보(PNAS)》에 기고했다(참고 1).
"기온이 상승했을 때 주변에 영토를 다투는 거미들이 많으면, 거미들 간의 경쟁이 빈번해져, 서로 싸우거나 잡아먹는 현상이 일어난다. 이러한 내분(內紛)의 와중에서 어부지리를 얻은 톡토기는 개체수가 증가하여, 토양 속에 서식하는 균류를 더 많이 먹어치우므로, 유기물의 분해에 따른 온실가스 방출을 억제하게 된다"라고 콜츠는 설명했다.
【참고】 기후변화가 늑대거미의 개체수에 미치는 영향
왜냐하면 여름철에는 영양분이 풍부하여 번식을 하기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수십 년 동안 북극의 여름이 점점 더 길어져 왔는데, 따뜻한 계절이 길어진다는 것은 늑대거미의 성장 및 생식 기간이 연장되었음을 의미한다.
늑대거미의 생식기간이 연장되면 개체군의 규모가 증가할 가능성이 높아지므로, 계속되는 기후변화는 북극의 생태계 균형에 어떤 방향으로든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
"이런 방식으로 온실가스 배출이 정확히 얼마나 저감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늑대거미와 톡토기의 개체수만을 감안할 때,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가 바뀜으로써 토양의 분해가 바뀌고, 궁극적으로 북극의 기후변화에 안전판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효과가 얼마나 큰지를 알아내려면 좀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라고 콜츠는 말했다.
"사람들은 거미를 혐오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라고 그녀는 덧붙였다.
양병찬 과학번역가(https://www.facebook.com/OccucySesamelStreet)
※ 참고문헌
1. http://www.pnas.org/cgi/doi/10.1073/pnas.1808754115
2. https://animals.mom.me/spiders-arctic-6713.html
※ 출처: Science http://www.sciencemag.org/news/2018/07/could-tiny-spider-be-helping-arctic-stay-c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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