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펫] 남편의 해외 파견근무로 갑작스럽게 해외 이주가 결정되고 나니 갑자기 평화롭던 일상이 난리통이 되기 시작했다.
사실 외국계회사에 다니던 남편의 해외파견 이야기야 오래 전부터 있었던 것이지만 원래는 남편과 큰아이만 보내고 나와 작은 아이는 한국에 남아있으려고 했기에 별생각없이 느긋하게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어찌어찌 다함께 가기로 급결정을 해버리자 그야말로 발등에 불이 똑 떨어져버린 것이었다.
갑작스럽게 3년이나 해외로 나가있게 되고보니 해야 할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었지만 그중 제일 먼저 해야 하는 것은 고양이 이주 준비였다. 우리집에 오신지 만 7년이 넘어가는 첫째고양님. 그리고 아직 2년도 안된 둘째고양님.
두 분 고양님을 모시고 사는 집사에게 제일 중요한 건 집을 어쩔 것인가도, 프랑스 비자 해결도 아닌, 고양님 모시고 비행기를 탈 준비였던 것이다.
사실 나는 고양이를 데리고 해외를 나가는 것이 이렇게 복잡한 줄 몰랐다.
그냥 간단하게 다니던 동물병원에서 검역서류를 받아서 가면 되는 줄 알았는데 사람은 손쉽게 비행기만 타면 되는 것을 동물은 접종에, 서류에, 복잡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하긴, 사람도 여권이니 비자니 챙길 것이 많긴 하다. 대개 그런 걸 다 알고 미리 준비해두니까 간단해보이는 거지.
암튼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되면서 놀랄 일의 연속이었는데, 그 첫번째는 시간이었다.
고양이가 비행기를 타려면 무려 4개월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람은 비행기를 탈 아무 준비가 안되어 있더라도 여권 만드는데 며칠, 비자 만드는데 2주 정도면 되지만 고양이의 사정은 달랐다.
개, 고양이가 해외에 입국하기 위한 필수 요건인 광견병 항체, 접종부터 그 항체를 확인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4개월이나 되기 때문이었다.
까딱 잘못했으면 고양이 때문에 비행기 못타고 혼자 서울에 남을 뻔 했다. ㅠㅠㅠ
두번째 놀랄 일은, 비용이었다. 접종 비용이나 서류 만드는데 한 푼도 안들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돈이 그렇게나 많이 드는 줄은 전혀 몰랐다.
우선 고양이 검역 및 출국과 관련한 업무를 하는 곳이 일부 병원으로 한정이 되어있고 동물 검역 관련 서류를 만드는 것이 생소한 분야다보니 전문 병원에 맡기게 되기 때문이 아닐까.
인터넷을 찾아보다보면 서류 양식을 직접 다운받고 검역소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절차를 진행하여 출국한 사람들 경험담도 있지만 동물을 데리고 비행기를 타는 경우가 그리 흔한 일은 아닌지라 아직 보편화되어 있지 않았다.
아무튼, 가기로 결정하고 관련 정보를 알아보면서 이 두 가지에 기절초풍한 나는 당장 열 일을 제치고 다음날부터 고양이 이주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혹시나 싶어서 다니던 동물병원에 문의를 해보았지만 해외 출국업무를 하지 않는다며 전문 병원을 소개시켜 주었고, 그 병원에 전화로 문의를 했더니 시간없다고 당장 고양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오라고 하셨다.
비용이 너무 비싸서 셀프로 할까말까 고민중이긴 한데... ㅠㅠ 시간 때문에 어려우려나..
그런데 어느 나라로 가는지, 얼마나 머무는지, 왜 가는지 등등을 이야기하다가 회사 주재원으로 나간다고, 어느 회사라고 말했더니, 그야말로 깜놀할 말씀을 하신다.
그 회사 직원의 고양이를 2년전에 담당했다며 고양이 이주 비용을 회사에서 전액 지원했다는, 귀가 번쩍 트일 말이었다.
주재원의 이사비용을 대주는 건 알고 있지만, 고양이 이주 비용까지 대준다고??? 아니, 왜???
내가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이긴 하지만 대한민국 문화에 익숙한 나로서는 참으로 납득이 안가는 놀라운 발상이었다.
남편의 회사는 외국계 기업인지라 그 쪽 문화에서는 동물도 가족이기 때문에 주재원 가족의 이사에 반려동물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는 거라나.
이게 웬 떡!!!
수십만원의 비용을 내 생돈들여서 가야하나 멘붕에 빠져있었는데!! 남편의 회사가 갑자기 세계최고의 복지를 가진 멋진 회사가 되어 후광을 뿌리며 공중에 둥둥 떠오르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수의사는 2년 전의 일이라 지금은 어떤지 모른다며 접종하러 오기 전에 미리 회사에 물어봐서 확인을 하고 오라고 하셨다.
나는 서둘러 전화를 끊고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고양이 이주 비용을 회사에서 대준다는데 사실이냐고. 남편 역시 금시초문이란다.
얼렁 총무과든 어디든 전화해서 알아보라고 했더니 파견 담당하는 부서는 프랑스 본사도 아니고 스위스에 있어서 담당자가 정해지기 전까지는 진행을 할 수가 없어서 알아볼 수가 없다는 거다.
ㅠㅠㅠ 어쩌라고. 광견병 주사는 당장 맞춰야 하는데.
그러나 남편은 급한대로, 깨알같은 글씨로 60쪽에 달하는 파견자 매뉴얼을 이잡듯 뒤지더니 마침내 반려동물 비행기값, 검역비용, 캐리어 등등의 비용을 회사에서 부담한다는 항목을 찾아내 내게 보내줬다.
두 마리까지 비용을 회사에서 부담한단다. 유레카~~!! 브라보~~!!
[고양이와 파리가기]는 권승희 님이 작년 가을 고양이 두 마리를 포함한 가족과 파리로 이주하면서 겪은 일을 개인 블로그에 올린 글들을 옮겨 게재한 것입니다. 권승희 님의 블로그 '행복한 기억'(https://blog.naver.com/PostList.nhn?blogId=dongun212)을 방문하면 더 많은 글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게재를 허락해주신 권승희 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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