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펫] 드디어 병원에 검역 관련 예약을 한 날이 왔다.
감 잡으면 고양이들이 침대 밑으로 숨어버리기 때문에 나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심드렁하게 있다가 전광석화처럼 움직여 평안히 앉아있던 첫째 고양이를 냅다 잡아서 캐리어에 넣었다.
"끄아아아오아오아오아옹~~~!!!!" 미안하다, 어쩔 수 없다.
그리고 난데없이 첫째가 캐리어에 갇히자 당황한 둘째 고양이는 손쉽게 잡아서 역시 캐리어에 밀어 넣었다. 캐리어가 좁아서 고양이가 겹쳐져 있고 난리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앞으로 여행용 캐리어는 비행기에 맞는 것으로 구입해야 하니까 지금은 좀 참을 수 밖에.
병원이 있는 잠실로 차를 몰고 가면서 고양이들에게 "엄마와 비행기 타고 외국으로 이사나가야 해서 주사를 맞아야 한다"고 이야기해 줬지만 난데없이 납치되어 차에 탄 이 상황을 고양이가 이해할 수 있을까.
늘 가던 동네병원보다 훨씬 더 멀리 차를 타고 가는데, 에고에고 얼마나 불안할까.
병원에 도착해보니 원장님은 오늘도 공항에 다녀오는 길이라며 곧 도착하실 거란다. 잠시 뒤 들어오신 원장님은 어차피 회사에서 비용을 대주는 것이니 고양이 건강검진도 싹 받고 나가면 좋겠다고 하신다.
그래서 오늘 고양이가 해야 할 것은 마이크로칩 삽입과 광견병 예방 주사, 건강검진을 위한 피 뽑기였다.
마이크로칩 삽입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고양이의 피부 밑에 연필심같은 칩을 넣는 거라, 가죽이 유연한 고양이에게는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다음 광견병 주사. 우리 고양이들은 병원에서 예방접종할 때 야옹도 안하고 가만히 잘 참고 있어서 순하다는 소리를 들은만큼 별 일 없을 듯 했다.
그런데, 피를 뽑는 일이 문제였다. 고양이의 피를 뽑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인건지, 의사는 내게 고양이를 잡으라고 한 다음 고양이 앞 발목 여기저기를 주사로 찔러댔지만 피를 얻지 못했다.
아프지 않을까. 저렇게 찔러대는데.
의사는 발목에서 실패하자 목 안쪽으로 위치를 바꿨고 하도 찔러대니 순하던 첫째 고양이가 으르렁거리며 하악질을 시작했다. 결국 의사는 안되겠다며 마취를 해야겠다고 했다.
마취...를 하려면 테스트를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하는 사이, 의사는 그냥 마취제를 주사했고, 약이 퍼질 동안 기다린다며 유리장 안에 넣어두고 둘째 고양이를 데려왔다.
손과 발, 얼굴이 더 큰 첫째 고양이에게서도 피를 뽑지 못했는데 더 가냘픈 둘째 고양이에게 성공할 수 있으려나.
아니나 다를까 역시 여러번 찔러대는 바늘에 고양이가 발버둥치고 하악질을 시작했고 결국 둘째에게도 마취제가 주사되었다. ㅠㅠㅠ
그런데 의사가 아까 마취했던 첫째 고양이를 보더니 이상하다며 왜 아직도 고양이가 꼿꼿한가 의아해했다.
우리는 아직 마취제가 안퍼졌나 하며 좀 더 기다렸는데 더 늦게 마취를 한 둘째 고양이가 이미 퍼져 널부러진 후에도 첫째 고양이는 자세를 유지한채 똑바로 앞을 보고 있었다.
의사는 "이상하다"하면서도 일단 마취가 된 둘째 고양이를 먼저 하자며 배드로 데려왔다.
이미 둘째 고양이는 온몸을 가누지못하며 널부러진 상태. 아무런 반항도 못하고 해삼처럼 늘어져있으니 몹시 안쓰러웠다.
그런데. 이번에도 피가 나오지를 않는다. ㅠㅠ
발목에 몇 번을 찔러넣은 후 겨우 피가 나오나 했는데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며 목에도 또 바늘을 꽃아 피를 빼냈다.
그야말로 피를 쥐어짜는 듯. ㅠㅠㅠ 너무나 안타까왔다.
어쨌거나 겨우겨우 둘째 고양이의 채혈이 끝났다. 아직도 마취상태이니 도로 유리장에 눕혀두었다.
이제 첫째 고양이 차례. 근데 허걱. 첫째 고양이는 아직도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게 아닌가!!!! 의사는 또 "이상하다"하면서 고양이를 꺼내 보았고 확인해보니 역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런데도 눈을 똑바로 뜨고 자세를 잡고 있었다니.. ㅠㅠㅠ 이놈은 예사 고양이는 아닌 듯 했다. 의사는 술취한 듯한 고양이를 베드에 놓고 채혈을 시작했는데 아, 정말 대단했다.
마취제가 온몸에 퍼져 말 그대로 손가락 하나 까닥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힘을 다해 하악질도 하고, 눈빛이 흐트러지지를 않는 것이었다.
몸무게가 둘째보다 0.5kg 더 나가서 그런 걸까. 아니면 정신력으로 버티는 걸까. 의지랄까, 초능력이랄까. 여하튼 놀랍도록 강인한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프고 안타까왔다.
얼마나 무섭고 공포스러웠으면 저렇게 초능력을 발휘해서 마취도 안될만큼 긴장을 하고 있는 걸까.
그래도 다행스럽게 첫째 고양이에게서는 피가 좀 더 쉽게 나왔다. 채혈 후 캐리어에 눕히고 마취가 풀리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의사는 그 사이 서류 작업을 정리하자며 이것저것 필요한 정보를 묻더니 수하물칸에 넣어보낼 커다란 캐리어 구입도 권하고 구충제도 복용하는 게 좋다고 2년치 약을 한아름 안겨준다.
회사에서 비용을 내는 거니 할 수 있는 건 다 하잔다. 근데 저렇게 하면 비용이 대체 얼마야...??? 내가 내는 건 아니지만... 그 큰 비용도 다 회사에서 내주나??
걱정스럽더니만 결국 비용은 전화로 문의했던 것의 두 배가 되었다!!!!
이렇게 큰 돈을 회사에 요구해도 되나 싶은데 의사는 2년전 그 직원의 비용은 이보다 더 높았다며 비용처리 방법만 정확히 알아오라고 하였다.
정말 이 큰 금액을 회사에 청구해도 비용을 내준단 말야??? 어쨌거나 그런다니까 그런가보다 하고 악 소리 나는 비용을 카드로 북~~ 긁었다.
이렇게 모든 일이 끝났지만 고양이의 마취가 풀리기를 기다려야 해서 나는 하릴없이 병원에서 머물러야 했다.
눈 부릅뜨고 버티던 첫째고양이 상태가 어떤가 보았더니 눈은 뜨고 있지만 별로 좋아보이지 않는다. 캐리어에서 꺼내서 안아보니 반항도 못한다.
평소에 안으면 3초만에 발로 뻥 차고 뛰쳐나가는 도도냥이인데. ㅠㅠㅠ 마음이 아프다. 얼마나 놀라고 얼마나 아팠을까.
고양이를 품에 안고 이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한참을 설명해주었다. 아프게 하려고 한 게 아니라고. 더 건강하라고 검진한 거라고.
가족들과 같이 이사가야 하는데 예방접종을 꼭 해야 해서 한 거라고. 한참을 안고 쓰다듬어주다가 캐리어에 도로 눕혀주었다.
마취 효과가 강력했던 둘째고양이는 어떤가하고 안아올렸다. 무슨 고양이 시체를 안는 기분이었다. ㅠㅠㅠㅠㅠ
몸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아 축 늘어지는 것이 정말 불쌍했다. 품에 안고 한참 달래면서 말을 해주다가 보니 옆으로 빼문 혓바닥이 바짝 말라있는 상태였다.
세상에, 마취상태여서 밖으로 빠진 혓바닥을 입안으로 집어넣을 수도 없는 것이었다!!! 눈을 뜨고 있어서 괜찮은줄 알았더니만!!
놀라서 의사에게 말을 했더니 의사가 손에 물을 묻혀서 혓바닥을 적셔주라고 하셨다. 그래서 정수기 물을 종이컵에 받아서 한동안 안고 혓바닥이 마르지 않게 물을 묻혀주었다.
그러더니 잠시후 고양이 엉덩이쪽이 축축해져왔다. 에고에고. 오줌을 싼 것이었다. ㅠㅠㅠ 얼마나 힘들었으면. ㅠㅠㅠㅠㅠ 불쌍한 내새끼 죽네. ㅠㅠㅠㅠ
이게 무슨 일이람. 너무너무 안쓰러워서 마음이 아파왔다. 한참을 품에 안고 괜찮다며 다독여주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고양이들이 조금씩 움직이는 느낌이 들었고 의사가 보더니 이 정도면 괜찮을 것 같다며 집에 가도 되겠다고 하셨다.
다만 올 때는 둘 다 캐리어에 넣어서 왔지만 지금은 상태가 안좋으므로, 첫째 고양이는 캐리어에, 둘째 고양이는 옆자리에 배변패드를 깔고 눕혀서 가기로 했다.
아직 맘대로 움직이지 못하니 별 일은 없을거라며.
그런데 웬걸, 차가 출발하자마자 옆자리에 널부러져 있던 둘째고양이가 의자 바닥으로 기신기신 기어서 내려가더니 의자 밑으로 기어들어 가려고 했다.
아이고~~~ 거길 기어들어가 버리면 나중에 어떻게 꺼내라고!!! 나는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한 손으로 고양이를 저지시키며 필사적으로 운전을 해서 갓길에 차를 세웠다.
이게 웬 위험천만한 일이란 말인가 ㅠㅠㅠ 그렇다고 널부러진 고양이 두 마리를 캐리어에 겹쳐서 넣을 수도 없고 어쩔 수 없이 둘째 고양이는 내 무릎위에 눕혀서 가기로 했다.
물론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고 자꾸 기어내려가려고 버둥거리는 통에 한 손으로 고양이 잡고 한 손으로 운전하며 간신히 집으로 돌아왔다. 그 정신없는 상태로 사고가 안난 게 다행이었다. ㅠㅠ
집으로 돌아오자 첫째 고양이는 비틀비틀 갈짓자로 걸어서 침대밑 은신처로 숨어버렸다. 하지만 둘째 고양이는 걸을 수가 없어서 책장 아래 좋아하는 상자에 넣어주었다.
다들 어딘가 안전이 보장된 곳에서 안정을 취해야겠기에. 그런데 좀 있다 다시 보니 박스가 축축히 젖어왔다.
둘째 고양이가 또 오줌을 싼 것이었다. ㅠㅠㅠㅠ 첫째 고양이는 오줌 안싸고 눈도 똑바로 뜨고 있는데. ㅠㅠㅠ
털도 다 젖어서 어쩔 수 없이 안고 화장실로 가서 엉덩이쪽만 살살 씻겼다. 평소같으면 버둥대고 난리가 났을 것을, 가만히 널부러져있으니 불쌍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마취가 조금씩 풀리는지 둘째 고양이도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비틀비틀 걷다가 쓰러지고 걷다가 쓰러지고 했다.
정말, 피곤하고 힘든 하루였다.
고양이 피뽑는다고 나보고 잡고 있으라고 해서 그 난리를 다 겪고, 마취되어 널부러진 고양이를 품에 안은채 몇 시간을 앉아 있고 한 손으로 고양이 말려가며 운전해서 겨우 집에 오고.
ㅠㅠㅠㅠ 고양이들은 이보다 몇 배는 더 놀라고 힘들었겠지. 아, 정말이지 고양이 데리고 파리 가려다가 고양이 잡는 줄 알았다.
고양이 데리고 파리 가기가 이토록 힘든 일일 줄이야.
[고양이와 파리가기]는 권승희 님이 작년 가을 고양이 두 마리를 포함한 가족과 파리로 이주하면서 겪은 일을 개인 블로그에 올린 글들을 옮겨 게재한 것입니다. 권승희 님의 블로그 '행복한 기억'(https://blog.naver.com/PostList.nhn?blogId=dongun212)을 방문하면 더 많은 글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게재를 허락해주신 권승희 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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