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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파리 가기]⑤ 이삿짐을 싸면서..불안해하는 냥이들

 

[노트펫] 남편과 둘째 아이가 먼저 떠나고 난 뒤 고양이들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감지한 듯했다. 

 

원래 고양이들을 주로 챙기는 건 나와 둘째 아이였기에 고양이들도 나와 둘째에게 주로 살갑게 대했더랬다.

 

특히 새초롬한 첫째 고양이는 그야말로 옆에 와주시면 우리가 다같이 황송해하는 도도냥이였고 고양이들에게 다정하지 않은 큰아들놈에게는 더욱 곁을 주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 도도냥이가 아침부터 자꾸 내 옆에 와서 귀염을 떨어대더니 급기야 소파에 드러누워있는 큰아들놈의 옆에 가서 앉는 것이 아닌가.

 

큰아들의 감동에 찬 목소리가 집안에 울려퍼졌다.

 

"엄마~~~ 얘가 내 옆에 와서 누웠어. 이게 대체 몇 년만이야~~" ㅎㅎㅎ 그래그래 좋겠다. 이건 정말 큰 사건이었다.

 

얼마 뒤 내가 방정리하자고 큰아들을 불렀지만 큰아들은 고양이가 옆에 있는 동안은 좀 기다려달라고까지 했다.

 

고양이가 가까이 와서 앉아 있어줄 때 느끼는 따스한 행복감. 이건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즐거움이다.

 

항상 덤벼서 안기는 개와는 다른, 비싸게 구는 고양이들이 주는 랜덤의 행복. 아무리 바빠도 그걸 포기할 수는 없지. 그래그래.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더니 식구 네 명이 복닥거리던 집에 두 명이 사라지니 고양이들도 불안한가보다. 에효.

 

 

걱정말라고, 얼마 안있어 우리가 형이랑 아빠 보러 갈 거라고, 계속 이야기해주었지만 당장 눈앞에 두 사람이 없어진 걸 어쩌랴.

 

고양이들이 상황변화를 느낀 건 없어진 사람 만은 아니었다. 일단 쉼의 공간이던 집이, 부산스러운 일터가 되어 버렸다는 점이었다.

 

쉬면서 고양이들도 봐주고 엉덩이도 토닥거려주고, 아옹~ 소리높여 부르면 달려가주던 내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엉덩이 한 번 안 붙이고 미친듯이 집안일을 해대고 있으니 그것도 불안할 일이긴 했다.

 

너무 바쁘니 고양이들이 불러도 바빠서 나중에 간다고, 대답만 했다.

 

특히 평소 밤이 깊어져도 내가 안방으로 자러 가지 않으면 똑똑한 첫째 고양이는 왜 자러 안오냐고 몇 번이고 불러댔더랬는데 내가 밤늦게까지 짐정리를 하다보니 불러도 자러 갈 수가 없었다.

 

몇번이고 나를 부르던 고양이 소리가 잠잠해지고 혼자 새벽 3시까지 일하다가 안방으로 들어가본 어느날. 아무도 없는 불꺼진 빈 방에서 고양이 두 마리가 가까운 곳에 누워서 자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엄마가 밖에서 일을 하면 고양이들이 둘째 아이 옆에서 자곤했는데, 둘째 아이도 가고 없어 빈 방에서 자고 있는 고양이를 보니 안쓰러웠다.

 

아빠도 형도 없어졌는데 엄마는 일한다고 쳐다도 안봐주니 얘들은 얼마나 불안했을까.

 

늦게 들어온 둘째 고양이가 넘 부산스러워서 새초롬하고 똑똑한 도도냥이 첫째가 곁을 안주며 구박했는데 이런 상황이 되니 가까운 곳에 같이 누워서 잠을 자는구나.

 

넘 미안해지면서 또 넘 귀여웠다. 그래도 마감 받아놓은 프로젝트 하듯이 이삿날 잡아놓고 짐싸느라 여념이 없는 나는 고양이들을 잘 챙길 수가 없었다.

 

 

얼마 안남았으니 용서해주려니 하고서 말이다. 그래서 둘째 고양이는 혼자 놀았다.

 

넘나 똑똑하고 넘나 새초롬한 첫째 고양이는 고양이라기보다는 '뭔가 사람은 아니지만 사람에 가까운' 무엇처럼 느껴졌는데 나중에 들어온 둘째 고양이는 첫째에 비해 너무나 멍청해서 언제나 천방지축 날뛰고 다닌터라 비로소 내가 고양이를 키우는구나, 싶었더랬다.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 못해서 둘째 아이가 장난감으로 많이 놀아줬는데 요새 아무도 안놀아주고 나도 바빠서 쳐다봐주지 않자 혼자 놀았다. 안쓰러웠다.

 

 

불쌍해서 짐싸다 말고 집에 있던 다이소 철망 세 개를 붙여 고양이 텐트를 만들어주었다.

 

둘째 고양이가 넘 좋아하며 쏙 들어가서 안 나왔다. 첫째 고양이도 궁금해하고 있는데 둘째 고양이가 절대 안나왔다.

 

마치 이건 내~~~~~꺼!! 뭐 이런 느낌??

 

 

언제나 형꺼를 뺏어야 했고 모든 건 형 것이 더 좋아보였는데, 마치 이건 처음 생긴 내꺼! 인 듯했다.

 

그런데 어느날 보니 첫째 고양이가 텐트 속에 들어가 있었다.

 

 

둘째 고양이는 안절부절. 그러다 펄쩍 뛰어서 그냥 옆에 앉나보다 했더니 잠시 뒤 텐트안이 소란스럽다.

 

결국 고양이가 바뀌어 있었다. ㅋㅋㅋㅋㅋ 요 텐트 가져가야겠다. 파리에서도 세워줘야지.

 

아직 두살도 안된 청소년 고양이인 둘째는 내가 온 집안 물건을 다 꺼내놓고 짐을 싸고 있으면 꼭 옆에 와서 이것저것 집적댔다.

 

 

넘 궁금해. 이것도 궁금하고 저것도 궁금해. 호기심 넘치는 고양이는 정말이지 귀여웠다.

 

그렇게 안방 서랍정리를 하던 중 풍선이 한 봉지 나왔다. 하나 불어줬더니 톡톡 치며 잘 논다. 넘 귀엽다.

 

 

좀 가지고노나 싶더니 그새 발톱을 세웠는지 터졌다. 망연자실.

 

아, 귀엽다. ㅋㅋㅋㅋㅋ 파리에 있는 남편에게도 메신저를 통해서 보여줬다. 이 맛에 사는가 싶었다.

 

 

 

갑자기 몰아닥쳐 짐싸느라 집안일이 평소 하던 양의 100배 쯤 되어서 넘 힘들고 넘 피곤하고 죽을 지경이었지만 요렇게 옆에 와서 훼방을 놓는 장난꾸러기 때문에 힘이 났다.

 

그렇게 정신없이 돌아치던 어느날. 집안이 온통 쓰레기장이어서 큰아들이 청소기로 청소를 하고 나도 욕실에다 뜨거운 물을 받아놓고 목욕을 했다.

 

오랜 만에 편안히 소파에 누워서 TV를 켜놓고 있으니 고양이들이 느긋해진다.

 

엄마가 앉아있고 TV소리가 들리니 이제 일상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아, 미안해졌다. 이게 폭풍전야의 고요인데. 이제 곧 비행기를 타고 열시간 넘게 장거리 여행을 가야 하는데.

 

내 귀여운 고양이들아. 너희들이 좋아하는 집을 떠나서 미안해. 하지만 그래도 너희와 떨어지고 싶지 않아서 같이 가려고 해.

 

우리 항상 이 평안한 일상을 함께하자꾸나. 

 

[고양이와 파리가기]는 권승희 님이 작년 가을 고양이 두 마리를 포함한 가족과 파리로 이주하면서 겪은 일을 개인 블로그에 올린 글들을 옮겨 게재한 것입니다. 권승희 님의 블로그 '행복한 기억'(https://blog.naver.com/PostList.nhn?blogId=dongun212)을 방문하면 더 많은 글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게재를 허락해주신 권승희 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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