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펫] 고마운 택시기사 아저씨 덕분에 우리는 늦지않게 공항버스를 탈 수 있었다. 그 버스를 탄 덕분에 늦지 않게 갈 수 있을 듯했다.
짐은 짐칸에 다 밀어넣고 고양이 캐리어만 들고 리무진버스를 탔는데 큰 아이는 캐리어를 무릎 위에 놓더니 의자를 뒤로 젖히고 잘 준비를 한다. 그리고는 바로 쿨쿨. 아 부럽. 어떻게 저렇게 잘 자는 거지.
잘 자는 큰 아이 옆에서 나는 또 혼자 바빴다. 검역소가 분명 오후 6시까지라고 되어 있기는 했는데 혹시 오후 5시까지 가야한다거나 그런건 아닌지, 어디로 가야하는지, 확인을 해둬야 했다.
하지만 분명히 인천공항 검역소로 검색해서 나온 전화번호로 연락을 했는데도 답답한 공무원들이 다 이리저리 전화를 돌리기만 한다. 아이고 속터져. 같은 말을 대체 몇 번을 반복하는지.
암튼 공무원들이 돌아돌아 알려준 번호로 전화를 했더니 이제야 말이 통한다. 그래서 몇시까지 가네, 뭐가 필요하네, 하다가, 공항 어디로 가야 하냐고 물었더니 하는 말이, 공항버스를 타고 온 적은 없어서 어떻게 오는지 모른단다.
그냥 주소를 불러주겠단다. 아니 무슨 말이지? 공항내에 있는 거 아니었어? 근데 주소를 불러주면 어쩌라는??
그런데 이어지는 말이 기가 막힌다. 여기는 공항이 아니라 주안역에 있는 검역소라나. 정말 욕나온다.
내가 분명히 오늘 비행기를 탈 거고 그래서 검역이 필요하니 검역소 연락처를 알려 달랬는데 아까 통화한 공무원은 대체 어쩌자고 주안역에 있는 검역소 번호를 알려주나 그래.
속터져라. 어쨌든 이번엔 정말 공항 검역소 연락처를 받았다. 전화를 하니, 매우 간단하다. 그냥 5시 반까지만 오란다. 위치는 공항안 F 카운터 쪽에 있단다. 그렇게, 겨우겨우, 위치와 시간을 확인했다.
그나저나 출국할 때는 검역절차가 공항에서 완료되는데 왜 프랑스에서는 공항에서 안해주고 나중에 고양이를 데리고 시청으로 가야하는 걸까.
동물병원 의사가 그렇게 설명해주었다. 공항에서는 아무 절차가 없으니 꼭 고양이를 데리고 시청으로 가라고. 그게 웬 귀찮은 일이람.
전화기를 손에 쥐고 무릎에 고양이 캐리어를 올려놓은 채 버스를 타고 가려니 졸음이 온다. 공항까지는 한 20분 남았는데. 이러면 안자는 게 낫다. 자다깨면 넘 괴로우니까. ㅠㅠㅠ
눈이 스르르 감기는 걸 겨우 참으면서 버티다보니 공항이다. 한시간 밖에 안 걸렸다. 자, 이제부터 또 짐과의 전쟁이다. 내려서 얼른 트롤리를 가져다가 짐들을 실었다.
그나저나 왜 이놈의 트롤리는 꼭 눌러야만 가는거야. 힘들어 죽겄네. 졸려서 기운없는데 트롤리를 겨우 눌러 밀면서 검역소를 찾아갔다.
허걱, 근데 왜 사람들이 줄을 서있는 거지. 앞쪽에 보니 뭔 신청서를 컴퓨터로 입력하게 되어있다. 이걸 미리 입력해야 하나. 근데 그놈의 컴퓨터가 정말 끝장나게 느리다.
반응도 속터져서 겨우겨우 입력하는데 그나마 에러가 났다. 왕짜증. 검역소 안에 들어가서 에러났다고 말을 하니, 축산 관계자냐고 묻는다.
아니 그냥 고양이 데리고 출국하는데요... 했더니 그런 거 쓸 필요없고 그냥 줄 서서 기다리란다. 다행이다. 그러나 기다림은 정말 하염없었다.
줄이 그리 길지는 않았는데 도무지 줄지를 않는 것이었다. 밤을 꼴딱 새고, 날뛰면서 이삿짐을 정리한 우리는, 넘 피곤해서 그야말로 죽을 지경이었다.
배도 고프고 피곤도 하고 정신이 혼미해지도록 기다리다가 겨우겨우 차례가 되어 들어갔다. 들어가보니 왜 줄이 길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이게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담당자가 다 꼼꼼히 서류를 확인하고, 고양이 몸에 칩이 있는지도 일일이 찍어보고, 또 뭘 다시 작성하고... 시간이 꽤 걸리는 일이었다. 그래도 담당자는 비교적 빠르게 처리해주었다.
고양이 한 마리씩 두 사람이지만, 일행이라서 한꺼번에 해주면서 말이다. 그리고 드뎌 끝났다. 수수료는 마리당 만원. 어느덧 시간은 6시가 되었다.
마지막 순서였던 우리가 검역소를 막 나서려는데, 어떤 커플이 너무도 태평하게 느릿느릿 걸어들어오더니 애견 출국 서류를 요청한다.
담당 공무원은 기가 막힌 듯 이 시간에 오시면 어쩌냐고 한다. 근데 이 커플은 검역소에 들러야 하는지도 몰랐던듯, 여기 가라고 해서 왔다고 심드렁하게 말하며 오늘 비행기를 탄다고 한다.
그런데 왜 이제 왔냐고 공무원이 말했지만 그들은 넘나 태평했다. 고작 6시 1분 지났는데 뭐가 문제냐는 거다.
사실 나는 지금까지는 6시에 칼같이 문닫는 공무원들의 스타일을 썩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순진한 건지 뻔스러운 건지 알 수 없는 커플을 보고 나니 저절로 그 공무원 입장에 공감이 되었다.
지금부터 시작해도 몇십분은 걸릴텐데, 문닫는 시간에 와서 죄송하다고도 안하고 어쩜 저리 당당할까. 우리나라는 참 목소리 큰 사람이 무조건 갑이다.
암튼 오늘 비행기 탄다는데 안된다고 매정하게 자를 수도 없는지라 그 직원은 한숨을 쉬며 서류를 받았다. 프랑스 같았으면 매정하게 문을 닫지 않았을까?
마음 약한 한국 사람들은 또 저렇게 어떻게든 해준다. ㅎㅎㅎ 그 공무원의 퇴근은 또 이렇게 늦어질텐데, 이런 일이 오늘만일까.
어쨌거나 끝이 난 우리는 밥을 먹으러 갔다. 오늘 처음 먹는 끼니이다. 원래는 고양이들 너무 힘들까봐 검역 마치면 바로 호텔로 들어가서 고양이들 풀어주고 우린 라면이라도 끓여먹을 생각이었다.
호텔이 레지던스호텔이라 부엌에 세탁기까지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넘흐넘흐 힘드니 그럴 여력이 나지 않았다.
아침부터 지금까지 조그만 캐리어안에 갇혀서 밥도 못먹고 화장실도 못간 고양이들도 정말 힘들텐데. 미안하다. 얘들아. 얌전히 가도 불안할텐데, 오늘 집을 나서면서 내내 너무나 생난리였다.
이제, 얼른 호텔로 가자. 조금만 더 힘을 내렴.
[고양이와 파리가기]는 권승희 님이 작년 가을 고양이 두 마리를 포함한 가족과 파리로 이주하면서 겪은 일을 개인 블로그에 올린 글들을 옮겨 게재한 것입니다. 권승희 님의 블로그 '행복한 기억'(https://blog.naver.com/PostList.nhn?blogId=dongun212)을 방문하면 더 많은 글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게재를 허락해주신 권승희 님께 감사드립니다.
회원 댓글 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