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펫] 작년 봄 어느 주말, 아직 미국에 살고 있을 때 일이다. 아직 이른 봄이었지만, 햇살은 따스했다. 봄의 전령이 빨리 오는 것 같았다. 주말의 특권인 늦은 아침을 즐기고, 거실에서 여유 있게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겼다. 그런데 뒤통수가 따가운 느낌이 들었다. 어느 미지의 존재가 멀리서 이곳을 지켜보는 것 같았다.
창문 쪽으로 갔다. 그날도 역시 그 녀석이었다. 매일 같이 우리 집에 출근하여 창문 너머 사람들의 세상을 구경하던 바로 그 길고양이었다. 고양이는 창문 바로 아래에서 목을 쭉 빼고 커피를 마시던 사람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길고양이는 우리 가족과 마치 밀당을 나누고 있는 것 같았다. 길고양이는 우리 집 뒷마당(back yard)에 와도 사람들에게 자신이 왔다는 것을 전혀 알리지 않았다. 다른 길고양이들은 일부러 자신의 존재를 사람들에게 알리기도 했지만, 그 녀석은 달랐다.
어떤 길고양이는 현관문 앞에서 문을 열어줄 때까지 야옹거렸다. 지금 배고프니 먹을 것을 달라는 적극적인 요청이었다. 그럴 경우, 고양이 식사를 챙겨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다소 시크(chic)한 성격의 그 길고양이는 그런 노골적인 길고양이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먹을 것에는 관심이 없었고, 사람들의 삶과 행동에 대해 궁금해 하는 것 같았다.
이 길고양이는 필자가 사는 집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2018년 2월말 촬영 |
우리 집에 많은 관심이 있었던 길고양이는 한 눈에 보아도 어렸다. 성묘(成猫)가 아니었다. 눈대중으로 대략 5~6개월 정도 되어 보였다. 새끼티를 갓 벗어난 크기였다.
이런 귀여운 어린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아이들도 어린 고양이를 키우자고 했다. 귀여운 어린 고양이가 특유의 도도함, 우아함, 신비스러움으로 가족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 같았다.
필자도 같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현실의 장벽은 높았다. 그 순간 재작년 미국 집주인이 한 말이 생각났다. 그는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예견한 건지 이런 얘기를 미리 했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세입자는 입주 전에 집주인과 계약서를 작성한다. 한국과 달리 미국 임대계약서는 마치 보험약관과 비슷하다. 작은 크기의 알파벳이 빼곡하게 적혀져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이 그렇게 작은 글씨를 읽고 계약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미 진행되고 있는 노안 때문에 한글로 된 작은 글씨도 읽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래서 외국인 전문 임대사업자들은 세입자들에게 중요한 것 위주로 간략하게 설명을 한다. 필자의 집주인은 나중에 불미스러운 일이 없도록 형광펜으로 밑줄까지 그어주면서 설명했다.
필자와 눈이 마주치자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시선을 돌리는 고양이 |
그가 가장 강조한 것은 반려동물이었다. 자신이 제공하는 임대주택에서는 반려동물들을 키우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네버(never)라는 단어를 몇 번 쓰면서 강조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임대주택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반려동물들은 벽면, 가구 등에 손상을 입힐 수 있고, 분변을 통해 집에 특유의 냄새가 나게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위약금 문제도 강조했다. 만약 세입자가 이런 계약 조건을 위반하고 개나 고양이를 키우면 상당한 액수의 위약금을 청구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니 미국에 있을 동안은 반려동물을 키우지 말라고 당부를 하였다. 미국의 주택은 바닥이 카펫이라서 반려동물의 소변이 그 카펫을 적시면 냄새가 오래간다는 얘기까지 부연 설명해주었다.
고양이를 집에 들여서 키우고 싶다는 아이들의 유혹을 거부한 후에도 귀여운 새끼 고양이는 우리 집을 자주 찾았다. 물론 귀국과 함께 그 고양이와의 인연은 끝나게 되었다.
일 년이 조금 넘었던 미국 체류 기간 동안 그 길고양이가 우리 가족들에게 작은 기쁨과 행복을 준 것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 덕분에 뒷마당에 예쁜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고 있다는 즐거운 기분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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