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김용민/비즈니스 워치 |
요즘 오징어 먹물 소스가 유행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오징어 먹물 파스타를 주문하면 이상한 표정으로 쳐다보기까지 했다. 새까만 국수라 맛과 모습이 이상할 텐데 진짜 먹을 수 있겠냐는 표정으로 몇 번을 설명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랬던 오징어 먹물 소스가 이제는 이탈리아 파스타나 리조토에서 빠져나와 다양한 음식에 쓰인다. 새까만 오징어 먹물 빵은 물론이고 오징어 먹물 짜장에 오징어 먹물 떡볶이까지 우리 전통 음식에까지 널리 퍼졌다. 가히 오징어 먹물 전성시대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오징어 먹물 소스가 익숙해졌으니 전혀 특별한 느낌이 없지만 사실 오징어 먹물 파스타를 처음 봤을 때는 다소 엽기적이다. 새까만 먹물에 국수를 비볐으니 저런 음식을 어찌 먹나 싶었을 정도다.
오징어 먹물 소스는 이탈리아에서는 다양한 요리에 쓰인다. 흔히 먹물 스파게티가 많이 알려져 있지만 리조또에 넣으면 오징어 먹물 밥이 되고 피자에 넣으면 오징어 먹물 피자가 된다.
오징어 먹물 스파게티를 이탈리아 고유의 음식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많지만 사실 오징어가 많이 잡히는 지중해 연안에서는 보편적으로 먹는 요리다. 스페인에도 오징어 먹물을 넣어 만든 음식이 있고 크로아티아에도 오징어 먹물 리조토와 비슷한 음식이 있다.
그런데 이탈리아 사람들, 정확하게 이탈리아를 포함한 지중해 국가에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오징어 먹물로 음식을 조리할 생각을 했던 것일까?
오징어 먹물 요리가 언제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한 정설은 없다. 일부에서는 옛날 가난한 시칠리아에서는 먹을 것이 부족했기 때문에 오징어 먹물도 버리지 않고 요리한 것에서 비롯됐다고도 하고, 일부에서는 르네상스 시대 베네치아에서 부를 축적한 상인들이 미각의 극치를 맛보기 위해 발달시켰다고도 한다. 시각적으로 아름다움의 절정을 이루는 검은 색을 내면서 미각적으로는 부드러운 바다의 향기를 음식에 녹여내는 재료로 오징어 먹물 소스를 발전시켰다는 것이다.
오징어 먹물 소스를 요리해 활용한 기원이 시칠리아인지, 혹은 베네치아인지는 호사가들이 만들어 낸 말일 것이고 유럽에서 오징어 소스를 식용으로 먹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 전부터다.
기록상으로는 기원전 1세기 무렵 고대 로마의 의사였던 셀수스가 그의 저서인 의약이라는 뜻의 ‘메디치나’에 오징어 먹물에 대한 설명을 남겼다. 오징어 먹물은 약으로 사용할 수 있는데 식욕촉진제나 변비치료제로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오징어 먹물이 좋다는 사실은 동양에서도 진작부터 알려졌었다. 동의보감에는 피가 뭉쳐 가슴을 찌르는 것처럼 아플 때 오징어 먹물을 식초에 섞어서 먹으면 좋다고 했고, 중국 의학서인 ‘본초습유’에도 오징어 먹물이 가슴 아픈 통증에 좋다고 했다. 동서양의 고대 의학서에서 모두 오징어 먹물의 효능을 인정했던 것이다.
미각적으로 독특한 맛에다 시각적으로 요리를 영롱한 검은 빛으로 장식하고 정서적으로 바다의 향기까지 느낄 수 있는데다 의학적인 효과까지 있으니 진작부터 음식을 조리하는 소스로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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