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들어 말티즈의 참변 소식이 잇따라 전해졌다. 용인의 ‘초롱이’ 생매장 사건에 이어 대전의 또 다른 말티즈 ‘동동이’는 머리가 함몰된 채 발견됐다. 다행이 두 마리 모두 목숨은 건졌다. 생명의 소중함을 세상에 항변이라도 하듯이 죽음의 벼랑에서 살아 돌아왔다. 천만다행이다.
이 두 사건을 접하면서 조우(遭遇)와 불우(不遇)를 떠올려본다.
조우(遭遇)는 사전적으로 ‘만남 또는 우연히 서로 만남’이라는 뜻이다. 불우(不遇)는 ‘재능이나 포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때를 만나지 못하여 출세를 못하거나, 살림이나 처지가 딱하고 어려운 상태’라고 설명되어 있다.
하지만 예전에 어느 한 한학자는 ‘조우’와 ‘불우’에 대해 ‘누군가를 만났느냐, 못 만났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갈린다고 풀이한 바 있다. 어떤 특정인이 그의 인생과 진로, 삶의 태도와 가치관에 영향을 준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면 ‘불우’하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생활이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나, 조실부모한 것만이 불우한 게 아니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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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말티즈의 얘기를 거론하면서 조우와 불우를 말하는 게 다소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도 생명인 것을, 누군가를 제대로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죽음의 공포를 경험하는 봉변을 당한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자신들을 구해준 누군가를 만났다는 사실이다. 순서가 바뀌어 자신들을 구조한 따듯한 손길의 반려인을 먼저 만났더라면 더 좋았을 일이지만 말이다. 그들을 버리고, 구조한 것은 모두 사람이다. 그러나 똑같은 사람은 아니다. ‘꽃보다 아름다운 게 사람이지만, 악마보다 더 무서운 것 역시 사람’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만든다.
전쟁으로 인해 기아에 빠진 아프리카 난민과 빈곤국 어린이들의 구호활동에 적극적인 탤런트 김혜자 씨는 10여 년 전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책을 썼다. 당시 그녀는 생명과 삶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잔잔한 울림마저 남겨줬다. ‘아름다운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감히 누가 누구를 때릴 자격이 있겠는가.
앞서 거론한 두 사건은 많은 애견인들에 상처를 남겨줬다. 반려동물을 학대하거나, 유기하는 파렴치한 행위들이 헤아릴 수 없이 일어나는 게 현실이지만, 그래도 이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성숙한 시민이 더 많다는 사실에 위안을 삼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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