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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카이로의 피라미드

아프리카의 시작, 카이로에서 아프리카 여행을 시작합니다. 대륙을 북에서 남으로 내달려 케이프 타운까지 이어질 종단여행. 그 시작은 문명을 낳은 나일강의 하구 카이로 기자 피라미드입니다. 이집트는 흔히 5개의 역사를 지녔다고 합니다. 룩소르를 중심으로 한 파라오 역사,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 로마역사, 멤피스를 중심으로 한 통일 이집트 역사, 카이로를 중심으로 한 이슬람 역사, 그 외 하나를 더 한다면 기독교 역사겠지요.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331년 니케아에서 공회를 열고 기독교를 인정하며 5개의 교구를 두었습니다. 그 중 하나인 알렉산드리아는 콘스탄티노플, 로마, 안티오크, 예루살렘과 함께 당시 로마제국의 주요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451년 칼케톤 공회에서 교리논쟁으로, 주류인 로마교회와 갈라서며 이집트 기독교는 곱트교라로 다른 길을 걷습니다.

 

카이로가 북 아프리카에 중심이 된 건 로마의 뒤를 이은 이슬람시대부터입니다. 시아의 파티마왕조가 카이로에 들어서며 카이로는 바그다드와 함께 이슬람세계의 두 축이 되었고 카이로에서 시작한 살라딘은 십자군을 물리치고 예루살렘을 회복하여 이슬람의 중심을 카이로로 가져오기도 하였습니다.

 

이렇듯 이집트는 고대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 북아프리카를 대표하고 있건만 오늘날의 카이로는 쓰러져가는 고목같이 쓸쓸한 뒤태를 보입니다. 도심은 무질서하게 들어선 아파트와 건물들이 반 이상이 텅 비었거나 공사가 중단된 채 앙상한 줄기를 드러냅니다. 나무에 잎이 없으면 쓸쓸하듯 빈 건물이 가득한 카이로는 회색빛 사막같이 쓸쓸하기만 합니다.

 

가이드는 그 현상을 탐욕이 낳은 결과라고 말합니다. 즉 10여년 전 무라바크 집권시대부터 이어온 무질서한 건축허가의 결과인데, 정부는 건축업자에게 허가를 내주고 은행은 정부정책에 따라 업자들을 지원했으니 수요나 소비자는 무시한 채 빈집을 양산한 것입니다. 그  와중에 업자는 돈을 벌고 정치가는 고리를 뜯었다고 합니다. 그 비용을 전부 서민한테 돌리니 서민들은 비싼 세금 때문이기도 하고 주거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지은 집이어서 들어가길 거부했다고 합니다. 불빛없는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들은 결국 쓰레기가 된 것입니다.

 

이집트 여행은 피라미드에서 시작해 애스원에서 끝나는 나일강 여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최초의 이집트 여행객으로 기록된 헤로도투스는 나일강 제1폭포. 지금의 애스원까지 여행하고 “이집트는 나일강의 선물이다.”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나일강이 낳은 위대한 건축물 피라미드 앞에 서서 한 장의 추억을 남기고 피라미드 안으로 들어갑니다.

 

세 개의 피라미드 중 기오스왕의 대피라미드는 석실이 피라미드 정중앙에 위치해 건축적인 난해함을 지닌 멋진 피라미드입니다. 다른 2개의 피라미드는 지하에 석실을 두었으니 건축적으로 보면 그리 어려운 작업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대피라미드를 선택해 들어갑니다. 피라미드 안으로 한참 가파른 오르막을 허리굽혀 오르니 방이 나옵니다.

 

미라가 보관되었을 석실입니다. 하지만 한 사람의 시신을 안치하기 위해 이렇게 거대한 공사를 벌였다는 게 이해가 가지않습니다. 보통 2톤이 넘는 돌을 2만여개 쌓아 만들었다는 피라미드는 현재도 미스터리라고 말할 정도로 규모가 거대합니다. 더욱이 1,000km 떨어진 애스원의 채석장에서 실어 날랐다니 더더군다나 놀랍기만 합니다.

 

피라미드 건축 현장 역사화

 

최초의 피라미드 건축자는 임호텝입니다. 흔히들 알고있는 미이라의 악인으로 나오는 임호텝은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 세티1세 다음으로 높은 귀족으로 알려진 인물로 서로 다른 별개의 인물입니다. 임호텝은 대사제로 파라오의 명에 따라 피라미드를 구상한 천재형 관리이지요. 그로부터 시작된 피라미드는 기자의 피라미드에서 꽃을 피웁니다.

 

지금은 메마른 사막 한가운데지만 피라미드를 만들 당시 기자지구는 나일강의 지류가 흐르는 풍요로운 땅이었습니다. 나일강이 있기 때문에 석재를 나를 수 있어 기자지구에 피라미드 건축을 상상하게 되었겠죠. 지금과 같이 바람에 모래만 날리는 사막이 아닌 나무가 성기고 물줄기가 휘감는 피라미드를 상상해보니 멋지기만 합니다.

 

가이드는 우리에게 질문합니다. 어떻게 돌이 저 위에 얹어졌을까요? 헤로도투스도 피라미드를 보고 같은 의문을 갖습니다. 그리고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듣고 지렛대를 이용해 돌을 들어올렸다고 자기 생각을 정리합니다. 하지만 지금부터 5,000년전에 무거운 돌을 들어올릴만한 튼튼한 지렛대를 어떻게 만들었을까요? 그건 그도 해답을 못 줍니다. 아직 철기가 시작되지 않은 시기입니다. 오리엔트에서 최초의 철기는 힛타이트부터 시작됩니다. 대피라미드는 그 이전의 일이지요.

 

나폴레옹은 시민혁명군을 이끌고 이집트를 점령합니다. 그는 결단력과 신속한 실행으로 전쟁에서 연전연승하며 시민군의 새로운 영웅으로 떠오릅니다. 유럽 여러 봉건제국에 의해 포위된 프랑스가 혁명에 실패하여 왕정으로 돌아가지 않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수 있었던 건 전쟁영웅 나폴레옹의 역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혁명군을 이끌고 이집트를 점령합니다. 그 때 동행한 학자는 석판을 하나 발견하고 그 내용을 해석하는 데 성공합니다. 바로 로제타 스톤이죠. 그때부터 이집트학이 시작됩니다. 파피루스로 전해오던 고대의 문서가 하나씩 해석되면서 찬란한 이집트의 고대문화가 하나씩 밝혀졌는데 그 중 하나가 피라미드 건축과정을 자세히 설명하는 문서여서 피라미드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게되었죠.

 

해답은 지렛대가 아닌 흙산이었습니다. 돌을 올리려는 높이만큼 흙산을 쌓고 경사면에 돌을 끌어올려 돌을 원하는 위치에 돌 블록을 올리고 건물이 완성된 후 흙산을 없애버리면 단단한 건축물만 남게 됩니다. 그런데 다시 놀랄 일이 생겼습니다. 건물의 전체적이고 정밀한 구조를 미리 정하지 않고 어떻게 흙산의 규모를 정할 수 있을까요? 돌 블록의 위치는 물론이구요. 모든 걸 정해놓고 하나씩 설계도대로 맞춰나간다고 가정해보면 설계도는 완벽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수학적 지식과 추론에 다시 한 번 놀랄 수 밖에 없습니다.

 

고조선은 2,333년 아사달에 세워졌으니 우린 토굴을 막 벗어났을 정도의 건축수준이었을 테고 문명이 탄생한 메소포타미아와 인더스도 이집트에 비하면 많은 차이를 보입니다. 이집트 이외 다른 세상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이집트에 너무 못 미치는 수준이니 놀라울 뿐입니다. 그래서 나온 또 다른 상상이 외계인설과 마지막 빙하기 이전 존재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잃어버린 문명의 존재설이죠. 피라미드에서 아무런 부장품이 나오지 않았다는 데서 의문은 증폭됩니다.

 

즉, 피라미드는 고도의 수학적 지식의 총체로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문명이 남긴 유산이라는 것이죠. 언어와 문자는 사라지거나 변하지만 수학적 원리는 변하지 않으므로 고도의 수학적 원리로 무언가를 설명한 게 피라미드라는 것입니다. 실직적으로 마지막 빙하기는 기원전 11,000년부터 시작해 기원전 8,000년에 끝나고 기원전 7,000년쯤부터 신석기 문명이 시작되니 4,000년의 시간이 흘렀다지만 원시상태에서 고도의 문명을 이루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고 동시대 다른 대륙에선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한 번의 회의는 가져볼만합니다.

 

피라미드를 만든 주인공이 남기려한 메시지는 뭘까요? 피라미드를 바라보며 깊이 생각에 잠겨봅니다. 그러나 미신같은 추론으로 이집트인의 지혜를 폄하시키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집트의 놀라운 인류사의 기여는 피라미드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피라미드와 조화롭게 자리잡은 스핑크스는 파라오 카프의 얼굴에 사자 몸을 가진 조형물입니다. 원래는 하나의 거대한 석회석 산인데 산 하나를 깎아 만든 것으로 피라미드가 무덤이라면 스핑크스는 무덤을 지키는 수호신입니다.

 

고대 이집트의 사원은 시신을 처리하는 장제전과 미라를 보관하는 무덤 즉 피라미드, 그리고 수호신상으로 구성되는 데, 이런 형식으로 이집트에 존재하는 260개의 피라미드사원 중 대부분이 파괴되고 현재까지 온전한 형태로 존재하는 유일한 유적이 기자의 피라미드랍니다.

 

여기 장제전에서 시신을 처리하고 장례의식을 행한 뒤 피라미드로 운구했겠죠. 그 길을 따라 걸어보려 했지만 피라미드 지구는 4시에 문을 닫는다고 합니다. 쫓기듯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돌아보고 첫날의 역사탐방을 마칩니다.

 

아프리카 여행기는 '아프리카, 낯선 행성으로의 여행'(채경석 지음, 계란후라이, 2014)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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