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큰 사막, 사하라를 향해 떠납니다. 사하라가 아랍어로 사막이라고 하니 뒤에 사막이라는 말을 붙일 필요는 없지요. 기원전 1,000년 사하라를 건너 그 어느 곳으로 줄달음치던 대상들이 목을 축였을 바하리야 오아시스를 향해 우리도 달려갑니다. 사하라는 미국대륙보다는 조금 작고 유럽대륙보다는 조금 큰 넓은 땅입니다. 서쪽 모로코부터 시작하여 동쪽 이집트까지 대서양에서 시작해 홍해에서 끝나기까지 띠같이 길게 횡으로 아프리카 대륙을 동서로 가름막이하는 자연장벽입니다. 그래서 사하라 북쪽과 남쪽을 전혀 다른 세상으로 비교하곤 합니다.
아프리카하면 사하라 남쪽을 생각할 만큼 같은 아프리카임에도 사하라 북쪽은 지중해로 여겨집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아프리카의 어원은 포에니 전쟁에서 승리한 후 카르타고를 지배한 로마의 장군 아프리카누스에서 유래했습니다. 아프리카누스의 땅이라는 의미지요. 그러니 진정한 아프리카는 사하라 북쪽이 맞고 사하라 남쪽은 다른 이름으로 불려야 할지 모릅니다.
사하라는 비옥한 초원이었다가 6,000년경부터 건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기후변화로 인해 초원에 흩어져 살던 사람들은 나일강 주변으로 몰렸고 인구가 몰리고 식량혁명이 일어나면서 문명이 싹텄으니 이집트 문명의 아버지는 나일강이 아니라 사하라라고 해야 옳을지 모릅니다.
사하라는 역사적 역할을 하나 더 합니다. 사하라가 건조해지면 수단남부 사람들은 에티오피아쪽으로 이주하고 수단북부 사람들은 이집트로 이주하며 사하라를 사이에 두고 이남과 이북은 각기 다른 역사적 과정에 들어섭니다. 그래서 사하라로 달려가는 길은 세상에서 가장 신비스런 문명의 모태를 찾아가는 여행이면서 역사의 변곡점을 찾아가는 길이기도 합니다.
바하리아 오아시스에 닿으면 기원전 1,000년 이 지역을 지배한 술탄의 무덤과 무덤에서 발굴된 미라를 모아둔 미라 박물관을 찾아갑니다. 미라는 잘못된 표현이죠. 마미가 맞습니다. 일반적으로 이집트 마미를 만드는 과정은 위, 간, 창자는 썩지 않게 방부처리를 해서 작은 병에 보관하고 심장은 리넨(광목)붕대로 싸서 따로 둡니다.
내장기관을 뺀 시신은 소금물에 몇 일 넣었다가 방부처리를 한 후 리넨붕대로 싼 심장을 몸 안에 다시 넣은 후 붕대로 촘촘히 전신을 감아 만듭니다. 그런데 바하리아 오아시스의 마미는 심장 처리까지는 과정이 동일한데 리넨붕대로 전신을 감는게 아니라 석고로 전신을 바르고 석고가 굳으면 그 위에 모양을 그려넣고 마스크를 씌워 마미를 만듭니다. 이집트 마미는 붕대로 감은 후 장식을 하고 석관에 보관하는 것과 달리 관을 쓰지 않는 것이죠.
다시 3,000년 전의 지하세계로 들어가 새로운 세상의 마미와 만나봅니다. 석고를 사용한 마미는 그리스와 문화적 영향을 주고받았을 것으로 추측되는 단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궁금한게 생기죠. 왜 심장은 방부처리를 해서 몸 안에 넣을까요? 내세를 믿은 이집트인들은 죽으면 저승의 신 오리시스 앞에서 심판을 받는답니다. 오리시스는 법원을 상징하는 저울을 들고 그 사람의 죄과를 저울질하는데, 그 판단으로 심장의 무게를 단답니다.
그래서 심장이 무거우면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이라서 무시무시한 동물이 먹어버려 내세가 없어지고 심장이 가벼우면 천사가 손을 잡고 하늘나라로 데려간다는군요. 세상의 파라다이스, 누구나 갈망하는 그곳으로 말이죠. 그러니 이집트인들이 사자의 심장을 고이 싸서 몸 안에 넣어두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이해가 갑니다. 아즈텍과 마야는 심장을 태양에 바치며 기원했다지요. 고대인들에게 심장은 마음이자 몸의 중심입니다. 현대인은 머리를 몸의 중심으로 생각하니 뇌로 죄의 다과를 평가 받을지 모릅니다.
사하라 여행은 짧게는 3일에서 길게는 10일까지 다양합니다. 카이로를 떠나 5개의 오아시스마을을 연결해 이집트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시와 오아시스까지 잇는 여행이라면 10일도 부족합니다. 우리의 여행은 첫번째 오아시스이며 백사막과 흑사막을 돌아보는 3일간의 짧은 사하라 여행입니다.
바하니아 오아시스에서 도요다 랜드쿠르즈로 갈아타고 2시간을 달리면 백사막에 닿습니다. 백사막은 광활한 석회암대지로 산이 풍화되며 석회암반이 드러나고 다시 풍화에 깎여 기괴한 모양의 조형물이 만들어진 순백의 사막입니다. 사막으로는 아주 희귀한 모습이죠. 볼리비아 알티플라노에도 비슷한 대지가 있지만 볼리비아는 사암이 깎여 만들어진 것이고, 사하라의 백사막은 석회암이 깎여 만들어진 것이라 더 선명하고 거대하며 인상적입니다.
사막의 멋은 그리움과 기대라고 했던가요? 우리가 잃은 것에 대한 그리움, 생소함에 대한 기대를 찾아 사막에서의 첫 밤을 보냅니다. 사막의 주인 베드윈 청년은 바람막이를 쳐주고 바닥에 카페트도 깔아줍니다. 만들어준 차를 마시며 하늘을 보고 있노라면 별을 헤는 시인의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렇게 사하라의 첫날밤은 감미롭게 깊어갑니다.
사막의 둘째날은 백사막의 다른 얼굴을 찾아가는 행로입니다. 사막 한가운데 있으니 서두를 필요가 없지요. 느긋하게 12시간 잠을 자고 일어납니다. 해가 못자게 훼방을 놓을 때까지 누워있어도 대지와 기를 순환하는 몸은 편안하기만 합니다. 느긋한 아침을 먹고 백사막 다른편(new while desert)으로 달려갑니다. 아직 풍화가 덜 된 사막은 모굴같이 흰색의 꽃봉우리가 봉긋봉긋합니다.
다시 차를 몰아 아가바드 사막으로 달려들어 점심을 먹습니다. 점심먹는 곳은 사막 한가운데임에도 신비한 물줄기가 있습니다. 사람이 찾아오면 물이 흐르고 사람이 떠나면 물이 멈춘다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말을 가이드는 늘어놓습니다. 어쨌거나 사막 한가운데 자리한 샘은 생명력에 대한 신성한 감흥입니다.
영화 아라비아 로렌스에서 오마샤리프는 우물에서 물을 한 단지 훔쳤다는 이유로 총을 쏴 죽이는 장면이 나옵니다. 우물에서 물 한 단지를 뜬다고 물이 없어지지는 않지만 물을 훔치는 건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도둑질이라고 말합니다. 때에 따라 이유가 될만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를 위해 흐르고 있다는 우물에서 머리도 감아보고 목도 축여봅니다. 오후엔 화산 쇄설물이 쌓인 대지를 달려봅니다. 거의 쇠에 가까운 돌덩이는 부딪히면 쇠소리를 내며 깨집니다. 대지를 촘촘히 메운 봉우리들이 꽃망울 같이 피어나 마치 필리핀 보홀섬의 초콜렛 힐을 보는 듯 합니다. 이렇듯 사막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며 사하라의 둘째날을 보냅니다.
사하라에서 카이로로 돌아오는 날은 마지막으로 흑사막의 감동이 기다립니다. 아마도 오랜 옛날 사하라 대지는 열로 들끓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 하나가 터지면 에너지가 대지 밖으로 분출되어 나왔기 때문에 남은 화산들은 부풀어 오르다 그대로 멈춰버렸을 것입니다. 움직임이 멈춰 화석이 되어버린 화산은 아름다운 꽃봉우리같이 대지를 수놓습니다. 작은 봉우리에 올라 대지를 수 놓은 흑사막의 입체감에 잠시 도취되었다가 카이로로 돌아오면 사하라의 주인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북아프리카는 이집트의 함족와 베르베르인의 땅입니다. 이들이 사하라의 넓은 문명을 일구었습니다.
이집트는 풍요로운 문명국이어서 오리엔트에서 여러 셈계뿐 아니라 아리안계인 힛타이트,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까지 탐을 내고 침입해옵니다. 그러나 그 영향이 미약해 하나의 세력이 사라지면 다시 복구되는 과정이 반복됩니다. 그러나 이슬람의 확장은 북 아프리카를 근본적으로 바꾸었습니다. 아랍전사들은 북아프리카에 정착했고 특히 사하라를 무대로 활동하던 베르베르인과 배짱이 맞았는지 투그게아족, 무어인 등 다양한 혼혈민족을 만들었습니다.
그들의 무대가 사하라고 사하라를 건너 사하라 이남과 이북을 연결한 문명의 전도사이기도 합니다. 오늘날에도 그들은 사하라를 떠나지 않아 우리를 사하라 한 가운데로 안전하게 안내합니다. 바하니아 오아시스로 돌아와 베드윈 청년의 환송을 받으며 사막을 떠납니다. 노래가 멈추지 않는 신명을 가졌고 자연을 즐겁게 맞이하는 여유로움이 기억에 남는 청년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이는 청년이지만 벌써 부인이 둘이랍니다.
그렇게 사하라에서의 3일을 끝내고 카이로로 돌아와 한국식당을 찾아가니 사장님이 울상이군요. 핸드폰에서는 얼른 이집트를 떠나라는 외무부에서 보낸 메시지가 산더미같이 쌓여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이집트로 들어오는 국경인 아카바에서 테러로 인해 관광객 1명을 포함해 5명이 죽었다는 군요. 그것도 한국성지순례 관광버스였답니다. 모든 관광팀이 다 취소되었다는 사장님의 말에 그만 돌아가야하나. 여운이 짙었습니다.
아프리카 여행기는 '아프리카, 낯선 행성으로의 여행'(채경석 지음, 계란후라이, 2014)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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