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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지상에서 가장 화려한 여행 다나킬 분지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지구에서 가장 여행하기 어려운 다섯 여행지 중 하나로 꼽힌 지구의 아궁이를 찾아 떠납니다. 대부분의 아궁이는 해수면 아래에 위치합니다. 미국의 데스밸리, 이스라엘의 사해, 중국의 투르판 모두 해수면 아래로 대단한 열기를 뿜는 아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동아프리카 지구대의 중심지 다나킬 분지는 가장 외지고 가장 높은 고열을 내뿜는 아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동아프리카 지구대는 북쪽의 시리아 협곡부터 남쪽의 모잠비크 텔리고아만까지 이어지는 장장 6,000km의 긴 골짜기입니다. 아프리카판과 아라비아판이 서로 반대로 작용하며 대지를 갈라 깊은 협곡이 만들어졌고 땅이 갈라지며 바닷물이 밀려들어와 거대한 소금호수를 만들었습니다. 물론 지판이 벌어지면서 대지가 얇아져 화산 활동이 활발해져 주변은 온통 용암과 화산 쇄설물로 뒤덮인 광활한 대지이기도 합니다.

 

화산은 두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터지면 목숨을 가져가지만 터진 뒤의 대지는 비옥하고 기름져 생존한 자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줍니다. 이런 비옥한 환경이 인류진화의 토양이 되었습니다. 318만년 전에 태어난 최초의 인류 ‘루시’도, 16만년 전에 태어난 현생인류의 직계 조상 ‘이탈두’  역시 동아프리카 지구대인 이 지역에서 태어났습니다. 구체적으로 지역을 좁히면 에티오피아 북동부에서 태어났습니다.

 

6,000km의 동아프리카 지구대는 비옥한 사바나 대지와 풍성한 호수, 계곡 등 다양한 자연을 잉태했습니다. 하지만 다나킬만큼 독특하고 경이로움을 자아내는 장소는 없습니다. 그래서 다나킬 분지는 동아프리카 지구대의 심장이며 대지의 꽃입니다. 대지의 꽃을 구경가는 길은 혹독합니다. 일 년 중 2,3월만 접근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달리는 자동차 바퀴가 차올린 화산재가 구름같이, 눈같이 유리창에 내려와 와이퍼로 창을 쓸며 가야 할 정도여서 비가 오면 진흙탕이 되므로 어떤 차도 들어갈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방문한 시기인 2월 말은 가장 좋은 시기임에 분명합니다.

 

우리는 5명의 외국 청년들과 한 팀을 만들어 첫 날 메켈레를 떠나 다나킬 분지로 향했습니다. 이 곳은 에티오피아 정부와 관계과 좋지 않은 아파르족(Afar)의 땅으로 그들은 2년 전 관광객을 공격해 3명이 총격전 중 죽고 2명의 독일인이 인질로 잡혀가 독일정부의 협상으로 풀려난 일이 있었답니다. 그 이후 에티오피아 정부는 1,000여명의 군대를 이 지역에 상주시켜 일체의 무장활동을 제압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단독 여행은 불가능하고 일정수준의 팀을 만들어 같이 움직이는 게 여기의 운영시스템이었습니다.

 

메켈레를 출발 할 때는 우리와 5명의 외국청년들 외 1명의 현지가이드와 1명의 주방장이 같이 타고 출발합니다. 그리고 3시간여를 달려 다나킬 지구 입구인 베르할레(Berhale)에 도착하면 신고를 하고 경찰이 동승합니다. 물론 소련제 낡은 카빈 소정을 들고 탑니다. 베르할레는 아파르 언어로 불타는 산이라는 말로 벌써 온도는 40도에 육박합니다. 다시 3시간을 달리면 첫 날 숙박지인 하메드 에라(Harmed Era)에 닿습니다. 차에서 내리면 다들 어리벙벙합니다. 오는 도중 마른 나무줄기를 엉기성기 세워 벽을 만들고 그 위에 나무대와 잔 가지를 얹어 만든 집이 줄지어 있습니다.  아파르족은 유목민으로 나무대로 대충 얽어 집을 만들고 이동할 때 집을 헐어 이동한 후 다시 만든다고 합니다. 벽은 나무와 나무 사이가 시원스레 벌어져있어 바람조차 쉬어가지 않는 그런 집입니다.

 

여기가 오늘의 숙소라니… 왜 세상에서 가장 힘든 여행으로 꼽히는지 이해가 갑니다. 저녁식사는 주변 환경에 비해 아주 좋았고 잠자리도 신선해서 괜찮았습니다. 사각의 나무대에 새끼를 얽은 침대 위에 스폰지매트를 깔아줍니다. 지붕도 없고 해가 바뀌면서 바람이 불었지만 도리어 시원해서 잠이 솔솔 몰려옵니다. 더구나 너무 덥고 건조해 모기마저 없다는 게 신기하기만 합니다. 바람에 모래먼지가 귓볼과 입에 간혹 걸리지만 그래도 바람이 따스해서 이불을 덮은 듯 편안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건 하늘을 보고 잠을 청하는 맛이 아주 좋습니다. 눈만 뜨면 하늘 가득 별 잔치입니다. 별은 보고 있노라니 잠이 스르르 다가와 어느새 잠들었는지 나도 모르게 깊고 달콤한 밤을 보냈습니다.

 

다나킬의 이틀째는 다나킬 분지의 중심지를 찾아가는 길이고 실질적인 여행의 시작입니다. 이 날은 푹푹 빠지는 화산재 지대를 건너고 울퉁불퉁 부어 오른 용암대지를 건넙니다. 화산재가 덮힌 대지는 차 바퀴가 돌며 차 올린 먼지분말이 눈처럼 비처럼 유리창을 쓸어내려 밖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라서 용암대지는 올록볼록한 용암바위지대를 차가 바위를 타고 넘듯 지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80km를 달리는 데 7시간이나 걸립니다. 7시간을 달린 끝에 도착한 곳은 작은 도봄(Dodom)이라 불리는 병영마을입니다. 여기서 저녁을 먹고 해가 뉘엇 기울기를 기다립니다. 오늘 한낮의 온도는 44도였습니다. 복사열까지 하면 50도는 되지 않을까요? 그래도 그늘은 그리 덥지 않으니 사람이 사는가 봅니다.

 

다나킬 분지의 건기는 2,3,4월입니다. 나머지 기간은 전부 우기입니다. 우기에 비가 오면 50~55도 까지 올라간다는 데 그냥 55도가 아니라 습도가 높아 끓는 물을 몸에 계속 붓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 곳을 떠나지 않는 아파르족이 이해가 안갑니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정부가 메켈레에 집도 지어주고 이주를 시키려 해도 며칠 살다 춥다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다는 군요.

 

실크로드를 여행하다 자주 보았던 일이었습니다. 유목민들에게 집을 지어주고 정착을 시키려 해도 답답하다고 다시 들판에 나가 천막을 치고 잔다는. 어쩌면 도시에 사는 우리가 더 속박되고 불편한 삶을 사는지 모릅니다. 편의를 선택한 대가로 자연을 잃은 건 아닐까요? 그래서 자연으로 돌아가면 잠시나마 행복해지지 않나 생각합니다.

 

해가 뉘엿뉘엿지고 다나킬 분지의 살아있는 심장으로 트레킹을 시작합니다. 출발하기 전 발목까지 올라오는 중등산화를 신습니다. 화산재가 두텁게 쌓인 대지에서는 중등산화가 좋습니다. 용암대지에서는 날카로운 바위길이라 더욱 좋습니다. 3~4시간을 걷고 고도를 618m 올려 오늘의 목적지인 에르타 알레(Erta ale)화산의 화구능선에 다다릅니다.

 

이 곳에도 병영이 있어 군인들이 우리의 안전을 지켜줍니다. 물론 우리가 화산을 오르는 동안에도 순찰을 도는 군인을 만났습니다. 가이드 말대로 2012년 납치사건 이후 대규모의 군병력이 투입되 100% 안전지대가 된 듯합니다. 화구능선에 오르니 저 건너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붉게 타오릅니다. 가이드가 가리키는 손 끝에서 붉은 빛이 솟구쳐 오릅니다. 바로 세계에서 5개밖에 없다는 용암호수입니다. 그것도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가장 강렬하며 100년간 지속된 유일한 용암호수이기도 합니다.

 

에스나 엘라 화산

 

다시 가이드의 뒤를 따라 붉은 빛의 정체를 찾아갑니다. 가파른 사면을 내려가며 화산분화구 안으로 들어간다는 걸 알았습니다. 순간 겁이 나더군요. 어디든 내부로 들어간다는 건 상대가 받아주지 않으면 사건이 아니라 사고가 되기 때문입니다. 에르타 알레(Erta ale) 화산이 저를 받아줄까요? 바닥은 용암이 공기를 먹어 푸석바위 같이 밟으면 깨지기도하고 공갈빵 같이 텅 비어 발이 빠지기도 합니다. 다시금 목이 긴 등산화를 신은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바위가 칼날같이 날카로와 스치기만 해도 상처입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안전한 길을 따라 용암호수에 닿았습니다. 거대한 용광로가 막 쇳물을 부으려는 듯 끓어오르는 데 영화 반지의 제왕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반지를 집어 삼키는 거대한 용암. 감독이 여기를 와봤을까요? 그렇지 않고 이렇게 비슷한 지옥을 어찌 상상해 내었을까요?

 

용암호수는 열선을 따라 표면의 반 젤리형태의 흙이 빨려 들어가고 붉은 용암이 표면으로 솟아나는 과정을 반복합니다. 그러다 에너지를 못 이기면 붉은 액체를 하늘로 토해냅니다. 작은 분출이 10여분에도 몇 번씩 반복됩니다. 특히 오른편 가의 용암분출구는 자주 솟구쳐올라 현지인들이 지옥의 문으로 부른다고 합니다. 하여튼 가슴이 두근거리고 심장이 멎는 듯한 강한 충격과 감동이 온 정신을 빼앗아간 시간이었습니다.

 

화구능선으로 돌아오니 가이드가 잠자리라고 돌을 쌓아 울타리 친 작은 움막을 줍니다. 오늘도 지붕은 없습니다. 더욱이 나무침대도 아닌 땅바닥에 스폰지 매트만 깔아줍니다. 그래도 하늘을 보고 별을 헤아리는 밤이라서 편안하기만 합니다. 화산의 기운이 몸을 감싸고 따뜻하게 위무해주는지 별을 하나 둘 세다보니 스르르 눈이 감겨 아침이 되었습니다. 비탈진 바닥이었음에도 신기할 만큼 편안하고 따스한 밤이었습니다.

 

2시간을 걸어 도봄(Dodom)으로 돌아와 아침을 먹고 다시 차량을 타고 하메드 에라로 돌아오니 해는 아직 중천입니다. 점심을 먹고 해지기를 기다려 소금호수로 달려갑니다. 바닥이 하얀 소금호수는 지난 겨울 경험한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 사막을 떠올리게 합니다. 우유니 사막에 비가 와 바닥을 촉촉히 적시면 그 아름다움이 하늘과 맞닿는 게 경관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유니에는 비가 와야 그런 경관을 보여주지만 다나킬 분지의 소금호수는 언제나 물이 찰랑거려 석양의 감미로움을 선사합니다. 바닥의 소금이 단단하고 날카로워 발바닥이 아픕니다. 슬리퍼를 가져오지 않아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아픔을 참아가면서 호수 깊숙이 들어가봅니다. 호수바닥을 보니 소금꽃이 피어 하나둘 내려 앉았습니다. 볼리비아에서는 주변 산맥에 미네랄이 많아 비가오면 미네랄이 물에 녹아 소금 결정체를 빨리 만들어 우유니소금사막을 만든다고 합니다. 빠르면 이틀 안에 소금 결정체를 만들 만큼 미네랄 성분이 많다고 합니다.  

 

다나킬도 그렇지 않을까요? 표면에 소금꽃이 피어 바닥에 가라앉는 현상까지 비슷합니다. 소금대지엔 소금만 있는 게 아닌가 봅니다. 여기 다나킬에는 포타슘이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캐나다 광산업체에서 포타슘을 캐가려고 도로를 만들고 있습니다. 다음에 올 때는 고생길이 줄어들어 좋지만 오가는 차량으로 복잡해질 도로나 다나킬의 자연이 조금이나마 다치는 게 우려됩니다.

 

다시 새로운 하루를 맞습니다. 지난 밤은 이전의 이틀 밤과는 확연이 다른 힘든 밤을 보냈습니다. 날씨가 흐려져 자는 동안 이슬 같은 비가 내렸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온 몸이 땀띠로 울긋불긋 합니다. 가려운 건 물론이구요. 만병통치약 호랑이 기름을 바르지만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원가를 줄이려 이전보다 함량이 줄었나요? 그래도 오늘의 일과를 다시 시작합니다. 그나마 오늘은 다나킬 분지를 벗어나 도심의 호텔로 돌아가는 날이어서 하늘이 흐려도 모든 게 행복합니다.

 

마지막 날의 첫 방문지는 달로화산입니다. 화산의 풍부한 무기물을 먹고 사는 미생물들이 만들어낸 색의 조화를 사진에 담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그렇게 색조가 감미로운 유황대지가 있을까요? 카메라에 찍히는 장면 하나하나가 동화에 나오는 신비한 이야깃거리 같습니다. 달로화산 지대를 한 바퀴 돌고 나와 소금광산을 찾아갑니다.

 

소금을 바닥에서 들어내어 소금블럭으로 자르는 사람, 거친 소금블럭을 균일하게 다듬는 사람, 다듬은 소금블럭을 네 개씩이나 묶어 낙타나 조랑말 등에 얹는 사람, 일은 분담되어 있어 보입니다. 대대로 이어온 소금 캬라반의 시작점이지요. 전세계 존재하는 소금 캬라반은 이제 몇 곳 없습니다. 티베트의 소금호수에서 히말라야를 넘어 돌포를 오가는 소금 캬라반, 북아프리카 니제르의 팀북투에서 아가데즈로 이어지는 소금 캬라반, 그리고 다나킬 분지의 소금 캬라반이 전통의 맥을 잇고 있지 않을까요? 대부분 소금 캬라반은 혹독한 자연환경을 이겨내야 합니다. 보석은 희소성과 영구성 때문에 빛을 발하는 데 오지에서 반짝이는 소금도 보석이 아닌가 합니다. 인간의 끝없는 노고를 요구하고서야 허락하니 말입니다.

 

소금 호수에서

 

4일간의 다나킬 분지 여행, 지구상에서 가장 혹독한 자연환경을 가진 지역이며 가장 매력적인 화산을 가진 대지고, 감동이 충만한 여행이었습니다.

 

아프리카 여행기는 '아프리카, 낯선 행성으로의 여행'(채경석 지음, 계란후라이, 2014)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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