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종단여행의 마지막으로 대륙의 끝, 테이블 마운틴 트레킹을 시작합니다. 최근 테이블 마운틴은 세계 7대 자연경관으로 뽑혔다고 입구부터 대단한 홍보를 합니다. 그런데 7개의 자연 유산을 홍보하는 포스터에 익숙한 사진이 보입니다.
제주 성산 일출봉입니다. 그러고 보니 몇 년전 새로운 세계 7대 불가사의와 세계 7대 자연경관을 선정한다고 설왕설래한 기억이 떠오릅니다. 돈을 얼마를 썼느니, 등등 뒷말도 많았던 오류 천지의 선정이었습니다.
포스터에서 꼽아놓은 7대 자연은 남미 아마존, 이과수 폭포, 아프리카 대표 테이블 마운틴, 그 외 베트남 하롱베이, 한국 제주 성산 일출봉, 인도네시아 코모도 섬, 필리핀 푸에르토 프린세사 지하동굴 등이었습니다. 필리핀 빼고는 모두 가 본 곳인데, 저는 전혀 동의하지 않는 선정입니다. 제가 그럴 자격은 없지만 저 나름의 세계 7대 자연경관을 뽑아봅니다.
화산으로는 에티오피아 에르타 알레 용암호수, 사막으로는 나미비아 나미브 사막, 소금 사막으로는 남미 볼리비아 우유니, 극지의 자연환경은 파타고니아, 산악미로는 네팔 히말라야 쿰부, 이야기 여행으로는 실크로드, 폭포로는 베네수엘라 엔젤 폭포, 이렇게 뽑고 싶습니다. 그러고 보니 바다가 빠졌습니다.
하여튼 케이블카를 타고 테이블 마운틴에 올라 1시간 정도 일주코스를 따라 걸은 후 하산을 시작했습니다. 하산을 시작하는 지점에서 멀리 희망봉이 보입니다. 희망봉은 태평양과 인도양이 합수하여 용트림하는 곳으로 포르투칼의 탐험가 바로돌로메우 디아스가 발견합니다. 10년 뒤엔 바스코 다가마가 희망봉을 돌아 인도로 가서 향료를 가져왔으니 유럽에겐 희망의 곶이긴 합니다.
유럽은 왜 인도로 그리 가려했을까요? 중국의 비단이 육지의 실크로드를 만들었다면 인도의 향료는 바다에 향료의 길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실크와 향료는 유럽인들에게 귀한 물건이라 이를 얻으려는 인간의 열망이 길을 만들었으니 길은 결국 의지의 산물이거나 탐욕의 자식이겠죠. 삼장법사나 법현스님같이 진리를 얻으려는 숭고한 마음도 길을 내는 데 일조하기는 합니다만 숭고함은 항상 탐욕보다 뒤지는 게 인간사인 거 같습니다.
로마시대에는 향료가 제국내 잘 보급되어 유럽 각지는 어려움없이 맛있는 고기요리를 즐겼습니다. 그런데 서로마가 멸망한 후 서유럽의 향료보급로가 끊어집니다. 향료를 대주던 인도상황은 안정적이던 쿠샨왕조가 중앙아시아에서 옮겨온 에프탈 훈에 멸망하며 혼란기에 들어갑니다. 향료보급지 중 하나인 중국도 삼국시대를 거친 후 5호 16국, 남북조 시대로 이어지므로 매우 혼란한 시기입니다. 반면 신흥 이슬람세력이 발흥해 두 세력의 빈 공간을 메워가며 확장해가기 시작합니다.
이슬람이 세력이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향료는 더 귀해지고 비싸져서 유럽사회는 극도의 경제적 압박을 받습니다. 이런 사회적 압박과 비용지출이 극도에 이르렀을 때 서유럽 봉건제국들이 십자군을 일으켰다는 설명이 있습니다. 즉 십자군전쟁은 향료무역로를 확보하려는 이유있는 전쟁이었다는 것이죠. 그러나 십자군전쟁이 성과없이 끝나자 대안으로 메달린 게 바닷길로 인도를 가는 방안이었고 그 길을 열어준 게 희망봉이었습니다. 그리고 희망봉을 돌아 유럽의 시대가 시작되니, 유럽의 세계 제패는 향로를 얻기 위한 처절한 사투의 보상이 아닌가 합니다.
희망봉이 가져다 준 어부지리가 또 있습니다. 러일전쟁 시 발틱함대는 유럽을 떠나 일본을 혼내주려 긴 항해에 들어섭니다. 아마 발틱함대가 계획대로 수에즈 운하를 통과해 블라디보스톡에 들어왔다면 일본이 전쟁에서 이기지 못했을 겁니다. 당시 세계 최강 함대였으니까요. 그런데 영국이 수에즈 운하를 봉쇄함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몇 달에 걸쳐 희망봉을 돌아갑니다. 아프리카 해안을 따라가는 동안 프랑스 식민지인 서아프리카와 영국 식민지인 남아공에서 물은 물론이고 물품보급을 하기 위한 입항마저도 거부당합니다.
발틱함대는 보급없이 무리한 항해를 계속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도양에 이르러서도, 인도에서도, 중국에서도 보급을 받지 못해 거의 탈진 상태로 대한해협에 들어옵니다. 이미 전쟁은 하나마나죠. 반면 일본은 영국에서 최신 함대를 들여와 발틱함대를 맞이합니다. 전쟁은 그렇게 맥없이 끝나 러시아는 패배하고, 그로인해 멘셰비키 혁명에 이은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 짜르체제가 끝나고 첫 사회주의 국가가 탄생합니다.
그때의 상황을 보여주는 멋진 영화가 떠오릅니다. ‘제독의 여인’이라는 영화인데요. 발틱함대를 이끌고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함대에 대승을 거둔 함장 코르챠크는 볼셰비키 혁명후에 20만의 백군을 이끌며 옴스크에서 적군에 맞섭니다. 짜르인 니콜라이 2세는 황실의 전 재산을 그에게 보냈다고 합니다. 기차로 5량에 달하는 황금이었다는데요. 문제는 전세가 불리하자 코르챠크 제독은 황금을 가지고 이르크츠크로 이동을 결심합니다. 그런데 이르크츠크에 다다랐을 때 이르크츠크를 지키던 체코 용병들이 적군에 항복해버려 하는 수 없이 병력을 이끌고 겨울 바이칼을 건너게 됩니다.
황금도 물론이구요. 바이칼을 건너 극동 사령부로 가려던 백군은 적군의 공격으로 바이칼에 대부분이 수장되었거나 얼어 죽었고, 일부 살아남은 백군 패잔병은 몽골로 넘어가 몽골에 짜르의 나라를 세웁니다. 지금의 관심사는 그 때 사라진 짜르가 보내준 황금입니다. 체코 용병들이 가져갔을까요? 아니면 바이칼 어딘가에 있을까요? 기차 5량분이라는 데, 아마 그 금괴가 세상에 나오면 금에 투자하신 분들 속 좀 쓰릴 듯 합니다.
테이블 마운틴 트레킹은 2시간 정도 걸려 점심시간에 끝이 났습니다. 오후에 무엇을 할까 궁리하다 가이드에게 희망봉에 가는 걸 알아봐달라고 했습니다. 본인은 등산 가이드여서 오전 투어만 하고 끝이니 다른 회사를 알아봐주겠다고 하더군요. 여기저기 전화하여 이야기하는 걸 보면서 얼마를 부르려나 불안했습니다.
그런데 가이드 니코의 대답은 간결하고 단순하기만 합니다. “희망봉에 가는 투어는 반일은 없고 전일만 있으니 당신들은 다음기회에 하든가 아니면 시외곽을 도는 시티투어 버스를 타라. 다른 방안으로는 택시를 대절해서 갔다오면 된다.” 이 친구가 소개해준다고 하며 얼마를 붙이지 않을까 하는 나의 속 좁은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고보니 여기 사람들은 남의 밥그릇이나 순서를 빼앗지 않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나라도 그렇고 중국이나 동남아 어디를 가도 내가 해줄게, 얼마에 해줄게, 내 아는 사람 소개해줄게 등등 무엇이든 팔려고 혈안이 아닌가요? 그런데 그 친구는 오늘 자기에게 주어진 일이 아니니 다른 투어회사를 통해 하라고 넌지시 조언하고, 그 외 우리가 직접 할 수 있는 방안까지 세세히 알려줍니다. 언젠가 잘 아는 선배가 오랜만에 홍콩에서 귀국해서는 그만 다시 홍콩으로 돌아가야겠다는 말을 하며 이렇게 자신을 설명한 기억이 납니다.
‘나같이 어리숙한 사람은 홍콩이 나아 홍콩은 기다리면 늦어도 차례가 오지만 한국은 기다려도 나같이 어리숙한 사람한테는 순서가 오지 않는 거 같아.’ 결국 그 선배는 홍콩으로 돌아갔습니다. 어리숙하고 착하면 차례가 안 오는 그런 악한 서울에 내가 살고 있는가? 언제든 남의 그릇을 빼앗아야 하고 새치기 해야만 살 수 있는 그런 세상에 내가 살고 있는가? 내 스스로도 남의 밥그릇을 빼았거나 내 밥그릇을 안 빼앗기려 바둥거리지는 않는가? 어제까지의 나를 다시 한 번 돌아보며 성과주의에 급급해 무엇을 했다는 나열로 바쁜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지, 그래서 스스로를 자꾸 불행하게 만들지는 않는지 생각해봅니다.
땅이 넓은 아프리카, 그들은 아직 여유롭고 멋집니다. 땅만 넓은 게 아니라 땅의 주인들도 가슴이 넓기만 합니다. 통일신라 이후 1,400년을 좁은 땅에서 아등바등 사는 우리, 반도를 한 번도 벗어나보지 못한 우리, 그나마도 반으로 잘려 섬보다 못한 막힌 하늘 아래 사는 우리, 이제 우리는 아프리카를 여행해야 합니다. 삶의 행복지수를 높이기 위해서.
아프리카 여행기는 '아프리카, 낯선 행성으로의 여행'(채경석 지음, 계란후라이, 2014)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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