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가게 앞에서 잠자다 죽임을 당한 고양이 자두를 추모하는 모습. 이 사건은 동물보호법 역사에서 가해자가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되는 첫 사례가 됐다. |
[노트펫] 동물학대사범 증가 속에서 4년 전 만들어진 경찰의 '동물학대사범 수사매뉴얼'이 일반에 공개됐다.
'신속한 수사 착수'를 강조하면서 동물학대범죄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을 주문하는 점이 눈에 띈다. 좀 더 치밀한 수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수사시 단계별 대처방안 등 전문적인 내용이 보완할 점으로 지적된다.
이은주 정의당 의원은 7일 국정감사와 관련, "경찰청 동물학대사범 수사매뉴얼이 부실하다"고 지적하면서 수사매뉴얼을 공개했다.
경찰청의 동물학대사범 수사매뉴얼은 2016년 10월 제작돼 일선 경찰서에 배포됐다. 동물학대범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면서 동물학대를 재물손괴 등 더 이상 단순 범죄로만 처리하고 넘어갈 수는 없게된 시대상을 반영한 조치였다. 수사매뉴얼 발간에 따라 경찰이 동물학대범죄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는 기대도 모았다.
동물학대사범 수사매뉴얼은 총 16페이지에 걸쳐 현황과 동물학대 벌칙 개관, 동물보호법상 동물학대 벌칙, 기타 특별법상 동물학대 벌칙, 그리고 수사시 유의사항 등 총 5개 항목으로 구성돼 있다.
가장 중요한 내용이 담겨 있는 항목은 다섯번째 수사시 유의사항이다. 유의사항은 3페이지 분량으로 '수사경찰의 자세'와 '피해동물의 안전 최우선 원칙', '관련 법령 숙지', '학대 증거 수집', '언론 적극 대응 및 제2차 피해 방지' 등의 항목으로 구성됐다.
수사매뉴얼은 '수사경찰의 자세' 편에서 "종래 동물은 재물과 동일시 되는 등의 생명경시 풍조가 있었으나, 최근 동물 애호가 등에 의해 동물학대의 불법성 인식이 재평가 되고 있는 여론 등을 감안해 수사에 임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신고 처리 및 수사과정에서 ‘이 정도는 동물학대가 아니다’라고 성급하게 단정하거나, 학대의심자에게 동조하는 언행 각별히 삼가고", "저인망식 단속은 자제하되, 악의적 조직적 동물학대에 대해서는 적극적 인지수사, 엄정한 사법처리"에 나설 것을 주문하고 있다.
'피해동물의 안전 최우선 원칙'에서는 "신속한 수사착수와 동시에 피학대동물에 대한 안전조치를 우선 원칙"으로 삼을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이를 위해 "피학대동물 발견시 사건수사와 동시에 관계 동물보호센터에 신속하게 인계 보호조치하고 조기 대응을 통한 학대자의 추가 학대 방지"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 "긴급을 요하는 치료가 필요한 경우 동물보호센터 인계 전이라도 의료기관(수의사 등)으로 인도, 조기 치료를 통한 추가 피해 방지"에 나설 것도 규정하고 있다.
'언론 적극 대응 및 제2차 피해 방지'에서는 "동물학대 사건 발생시 SNS 등으로 단기간에 급격히 유포되고, 방송 보도시 관련 여론이 급격히 악화되는 점을 감안하여, 신고 접수 및 수사 착수 후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를 진행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이와 함께 "사건의 진상파악 이전에 풍문이 기정사실화되거나, 확인되지 않은 사실의 무분별한 확산으로 제2의 피해자가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고 언론창구 단일화, 오보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할 것도"도 서술해 놓고 있다.
동물학대 행위에 대한 기존과 다른 접근을 요구하고, 신속한 수사 착수와 함께 피학대동물의 안전을 강조한 것 역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또한 주로 SNS를 통해 최초 폭로되고, 급격한 분노와 절망감을 유발하면서 파장이 커지는 동물학대범죄의 특성도 제대로 짚고 있는 편이다.
수사매뉴얼이 배포된 2016년 304건의 동물보호법 위반 사건이 발생했고, 331명이 검거됐으며 2명은 구속됐다. 이후에도 동물보호법 위반 사건은 매해 증가해 지난해에는 914건에 962명이 검거됐고, 973명이 검찰에 송치됐다. 3년 만에 수사 건수와 검거인원이 3배 안팎으로 급증했다.
동물학대는 범죄라는 사회적 인식이 지속적으로 높아지면서 적극적 신고로 이어진 것이 주된 사유다.
이은주 의원은 "수사매뉴얼이 현장에 제대로 배포가 됐는지, 실제 활용되고 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며 "실제 수사매뉴얼이 배포된 이듬해인 2017년 3월 제주도에서 오토바이 뒤에 매달려 끌려가던 개를 목격하고 신고한 신고자에게 경찰이 “별다른 처벌 조항이 없다”며 미온적으로 대처했다가 비난을 산 바 있다"고 지적했다.
또 "지금도 동물보호단체에는 “경찰이 동물학대 사건에 적극으로 나서지 않는다”는 신고가 꾸준히 접수되고 있다. “동물학대 관련 수사매뉴얼을 본 적이 없다”는 일선 현장경찰들의 증언도 나온다"고 일갈했다.
그럼에도 과거보다 경찰이 동물학대범죄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선 사건들도 분명 있다.
지난해 7월 발생한 경의선 숲길 가게 고양이 살해 사건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이 사건의 가해자는 높은 사회적 관심 속에서 법정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1991년 동물보호법 제정 이후 28년 만에 사실상 처음 동물학대범에게 실형이 선고되는 획을 긋는 판결을 이끌어 낸 것은 경찰의 적극적 수사가 기초가 됐다.
이 사건 역시 사건 초기 SNS를 통해 알려지는 전형적인 동물학대범죄의 전파 양상을 띠었다. 고양이 주인이 게시한 SNS 글이 일파만파 퍼지면서 공분이 들끓었다. 경찰은 고양이 주인의 신고와 함께 수사에 착수, 사건 발생 닷새 만에 가해자인 30대를 붙잡아 법의 심판대에 세웠다. 인적사항을 알 수 없는 가운데 경찰은 CCTV 영상 등을 토대로 주변 일대를 뒤져 30대 남성을 붙잡았다.
군산에서 화살촉이 박힌 채 발견된 고양이의 엑스레이 사진. 사진 동물자유연대 |
지난해 5월 전라북도 군산에서 발생한 길고양이 화살촉 피격 사건 역시 우수 수사 사례로 꼽힌다. 학대자는 살상용 화살촉인 '브로드 헤드'를 길고양이게 발사해 치명상을 입혔다. 군산경찰서는 길고양이 구조현장 인근 CCTV를 분석하고 인근 주민들을 상대로 탐문수사를 진행하는 한편 화살촉 구매경로를 추적하는 등 4개월 간의 수사를 진행해 40대 A씨를 체포하는 성과를 거뒀다. 동물보호단체는 수사팀의 공로를 인정하고 감사패를 수여했다.
이은주 의원은 "동물학대 사건은 대부분 사적 공간에서 은밀히 이뤄지고 정황 증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데다 사람과 달리 피해 당사자인 동물은 직접 증언이 어렵다는 특징을 가진다"며 "수사매뉴얼에서 다양한 동물학대 사례와 수사시 단계별 대처방안을 수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난 2016년 수사매뉴얼이 만들어진 이후 동물보호법이 다섯 차례나 개정됐지만 수사매뉴얼은 한 번도 정비되지 않았다"며 "동물학대사범 수사매뉴얼을 전면개정하고, 경찰 직장교육에도 포함시켜 의무적으로 관련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전채은 동물을위한행동 대표는 "동물학대사건은 너무나 많고, 들이는 품에 비해 주목도가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라며 "하지만 동물학대가 추후에는 사람을 대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동물학대수사에 임해달라"고 당부했다.
회원 댓글 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