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시티의 첫 인상은 극과 극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번잡하고 지루한 도시이기도 하고 다양함이 응축된 멋스러운 도시라고도 합니다. 나에게 멕시코시티는 어떤 도시일까요. 인구 2천2백만의 상해 다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서로에게 속삭이는 도시, 속삭인다는 표현이 상해에는 어울리지 않지만 멕시코시티에는 어울립니다. 그건 사연의 도시이기 때문입니다.
멕시코시티의 사연을 하나씩 벗겨가기 위해 라틴 아메리카를 대표하는 인류학 박물관을 여행의 첫 방문지로 삼습니다. 정문을 지나면 멕시코 신화에 나오는 생명의 나무를 형상화한 거대 조형물이 서 있는데, 이 조형물은 하나의 기둥으로 지지되는 세계에서 가장 큰 조형물 중 하나입니다.
이 조형물을 중심에 두고 전시실은 ㄷ자 원을 그리며 12개나 위치하고 있습니다. 박물관 여행은 눈과 머리를 잠시도 쉬지 않고 긴장해야 하므로, 머물러있는 시간이 지날수록 집중력이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보다 효과적으로 박물관을 둘러보기 위해 몇 군데 집어 보는 요령이 필요합니다.
저에게 그 선택은 아즈텍의 태양석(Sun Stone), 아메리카의 피라미드와 아프리카 피라미드를 비교해 볼 수 있는 중앙아메리카 전시실, 올멕 문명의 거대 두상이 전시된 멕시코만 전시실입니다.
첫 전시실에서 아즈텍의 태양석(Sun Stone)을 마주하니 난해한 표현과 거대한 규모에 압도당합니다. 무게가 24톤, 직경 3.5m 성인 남성 키의 두 배에 달합니다. 다시 한 번 지구 곳곳에 남겨진 거석문화를 생각하게 합니다. 경외스러운 존재에 대한 표현으로 이 보다 값진 노력이 있을까요. 이집트의 오벨리스크, 칠레 이스트 섬의 모아이 상, 영국 스톤헨지의 거대 입석, 코스타리카의 거대 둥근 돌, 모두 신을 향하고 있음이 자명합니다.
아즈텍의 태양석은 아즈텍의 수도인 테노쉬띠틀란 중앙 광장에 건설된 대신전에 세워질 입석이었습니다. 그런 종교적 목적을 가지고 있어 아즈텍인들의 삶을 관통하는 믿음이 단단히 새겨져 있습니다. 원판에는 중앙에 혀를 내민 태양과 그 주위를 5개의 원이 특별한 의미를 품고 조각되어 있습니다. 이는 아즈텍인들의 우주관을 함축하는데 바로 제 5태양계의 표현입니다. 5라는 숫자는 다양한 의미를 가진 상상의 숫자이기도 합니다.
이집트의 오벨리스크는 동서남북 사방과 이를 모으는 중앙에 제 5방위를 두었고, 잉카는 제국의 이름을 4방을 뜻하는 ‘타완틴 수유’라고 스스로 불렀으며, 4방의 중심에 쿠스코를 두어 형이상학적 제 5의 지역임을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5라는 개념 자체가 중국의 오행과 무관하지 않다는 이론이 있습니다. 세상의 질서를 설명할 때 하늘과 땅, 흑과 백, 악과 선 등 대치적 양자관념으로 보는 건 고대문명의 세계적 현상입니다. 하지만 5방위, 5행은 무언가 교류한 흔적이 아닐까요,
1570년 스페인에서 넘어온 초창기 신부였던 ‘환 데 또바르’ 신부는 아직 사라지지 않은 원주민들의 이야기를 모아 역사책을 씁니다. 그는 책에서 "아즈텍은 두개의 나라에서 왔는데 2차 대규모로 유입된 집단은 ‘아스틀란’에서 왔다"고 기록했습니다.
아스틀란이 어딘지는 미스테리이지만 아스는 아즈텍어로 ‘흰색’ 트란은 ‘땅’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니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의 땅이거나 ‘밝은 빛의 땅’ 즉, 해가 일찍 뜨는 한반도를 지칭하는지도 모릅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는 무리한 상상이 전부지만 꽤나 신빙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멕시코 역사책에 따르면 ‘쿨와’라는 민족이 서기 50년에 처음으로 멕시코로 이주했다고 합니다. 쿨와족은 북 아메리카에 뿌리를 둔 오래된 부족입니다. 그런데 ‘쿨와’라는 말은 ‘고리’라는 말에서 왔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많이 익숙한 단어입니다. 문고리 같이 둥근 물체를 표현하는 말이기도 하고, 부여를 건국한 민족을 고리족이라고 합니다.
배재대 손성태 교수는 이를 일필휘지로 설명합니다. "멕시코는 부여를 세운 고리족의 일파가 아메리카로 건너와 북 아메리카를 거쳐 멕시코에 정착했으며, 이들이 멕시코의 선주민이다. 뒤로 부여가 멸망하며 일파가 건너와 2차 이주를 하였고 만주의 맥족이 건너와 3차 대 이동 주인공이다"라는 설명입니다.
그는 보다 명확한 근거로 언어를 예로 듭니다. 많은 유사어를 나열할 뿐 아니라 교착어라는 공통점을 제시합니다. 교착어는 ‘주어, 목적어, 조사, 동사’ 순으로 배열해 문장을 구성하는 언어인데 전세계에서 우리말, 몽골, 만주어, 멕시코의 나와틀어, 잉카의 케추아어만 교착어라고 합니다. 그래서 손성태 교수의 주장이 아주 많이 근거있게 받아들여 집니다.
환단고기는 보다 명확하게 기술합니다. "마지막 부여인 연나부여가 494년 멸망하며 부여의 백성은 동서남북으로 흩어졌다. 그 중 왕족은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왕족이 되었고, 일부가 한반도로 들어와 백제를 지배하였다. 이에 백제는 583년 남부여라 국호를 고쳤다. 서쪽으로 간 세력은 7세기 불가리아를 세웠고 동쪽으로 간 세력은 베링해를 넘어 멕시코와 잉카의 주인이 되었다." 황당한 면이 있지만 앞 뒤를 끼워 맞추면 그리 무리해 보이지만은 않습니다.
만주에 근거지를 둔 부여와 맥족은 좁은 춥지반도(베링해)를 넘어 아메리카 대륙을 오갔고 오래전부터 그리로 넘어간 이웃에 대해 할아버지에게 이야기를 들으며 성장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에게 어려움이 닥쳤을 때, 오래 전 이웃들이 그리했듯 동으로 행로를 잡았을 것입니다.
멕시코는 유럽이 발을 들이기 전 ‘메히꼬’라 불렸는데, 메히는 ‘맥’이고 꼬는 ‘곳’, ‘장소’ 입니다. ‘메히꼬’는 즉, ‘맥이족이 사는 땅’이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니 멕시코는 서기 50년의 고리족, 650년의 부여 일족, 그리고 820년의 맥이족, 이들이 멕시코로 들어와 주인이 된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만약 이들이 멕시코의 주인이라면 우리와는 피를 나눈 형제입니다. 우리도 역시 고리족, 맥이족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무겁게 발걸음을 옮겨 다음 전시실로 들어섭니다. 잃어버린 문명을 찾아 헤매는 학자들이 증거로 내세우는 미스테리한 거대 두상이 전시된 멕시코 만 전시실입니다. 혹자는 거대두상을 에티오피아인 혹은 아프리카인이라고 하는데, 안내자 마누엘은 멕시코 원주민 중 어느 부족이라고 설명합니다.
올멕 문명은 기원전 1,500년부터 서기 200년까지 존재한 메소 아메리카의 최초 문명입니다. 메소 아메리카는 고고학적 구분으로 지금의 중미 지역을 말합니다. 기록에 의하면 거대 두상은 1862년을 최초로 현재까지 17개가 발견 되었습니다. 큰 것은 50톤에 달한다는데, 가장 크다는 두상은 제 키보다 한자나 큽니다.
누가 왜, 언제,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려진게 없습니다. 단지 추측하기 좋아하는 학자들은 아메리카와 아프리카가 기원전부터 서로 소통하고 교류했다는 증거라고 말합니다. 아메리카의 발견, 누구의 입장에서 발견인지 되짚어 볼만한 일입니다.
다음 중앙 아메리카 전시실로 발걸음을 옮기니 아메리카 대륙에 불행을 가져온 케틀코아틀 신전이 복원되어 있습니다. 피리미드 유적은 마치 이집트의 전유물로 여겨지지만 피라미드 유적은 역시 전 세계적인 현상입니다. 하늘을 향하는 마음을 표현하기에 이만한 것이 있을까요, 아메리카의 피라미드도 아프리카에 뒤지지 않습니다.
이는 종교적 삶을 살아가는 두 대륙의 높은 영성이기도 합니다. 세계 최대의 피라미드는 이집트가 아닌 멕시코 푸에블라주 촐루라(cholul)의 다치활테백(손으로 만든 산) 피라미드입니다. 물론 몇 년 전 중국 서티벳에서 발견된 180m 높이의 피라미드가 공식화되면 순위는 바뀌겠지만 그러기까진 피라미드에 관한 한 멕시코와 이집트의 아성이 이어지겠죠.
케틀코아틀 피라미드 모형을 천천히 살펴보니 이집트와 다른 특징 뿐 아니라 메소 아메리카 피리미드 만의 구조적 특징이 있습니다. 지구 라트형(끝이 편편한 피라미드)은 신전이나 제례용으로 만들어진 피라미드의 공통적인 특징이라 메소 아메리카는 물론,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피라미드, 심지어 최근 발견 되었다는 티벳트의 피라미드까지 다양한 지역에서 나타납니다.
반면 메소 아메리카만의 독특함은 기존 피라미드에 덧 씌우기 공사를 하여 새 피라미드를 입히는 공법입니다. 낡은 피라미드를 부분 보수하는 게 아니라 그 위에 새로운 피라미드를 덧 씌우는 방식은 메소 아메리카 만의 특징입니다. 케틀코아틀 신전은 9단의 기단에 긴 몸을 출렁이는 뱀이 보조되어 있는데, 케틀코아틀이 날개 달린 뱀신이기 때문입니다. 하늘을 나는 뱀, 우리에겐 아주 친숙한 동물입니다.
세상엔 존재하지 않지만 엄청난 파괴력과 힘을 가지며 하늘과 물을 지배하는 동물, 용입니다. 출처는 알 수 없지만 ‘동석씨의 중남미 스토리텔링’에서 저자는 멕시코의 기록에 의하면 670년 2차 이동 때 이들을 이끈 무당은 케틀코아틀이란 이름을 가진 용신을 섬기는 무당이었다고 합니다. 그가 용의 가면을 쓰지 않았을까,,, 보아도 보아도 알고 있는 용과 너무나도 같아 다시 한 번 돌아보고 전시실을 빠져나옵니다. 그러다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에 다시 발길을 돌려 ‘착몰’에 마지막 눈길을 모읍니다.
케틀코아틀이 이끈 무리에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케틀코아틀이 이끌던 시대에 인신공양은 아직 없었습니다. 인신공양은 서기 800년, 지배권을 행사한 똘떼까 시대부터 시작됩니다. 이 때 대규모로 맥이족이 북 아메리카에서 내려옵니다. 그들이 왜 그런 못된 일을 시작했을까요. 우리의 조상님들이 우리에게도 숨기신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요.
바이칼에서 우리 민족이 시작됐고, 바이칼엔 바이갈하란이란 해빙기에 신에게 여자애를 바치는 인신공양 풍속이 있었습니다. 바이칼에 사람을 던지는 풍속은 한반도로 들어와 임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으로 발전했지만 심청은 평화와 사랑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하지만 베링해를 건너 아메리카로 간 인신공양은 더욱 잔인하고 악독하게 자리 잡았습니다. 잔인함을 낳은 메소 아메리카의 문명은 발전하지 못하고 한발 한발 한계점에 다다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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