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해동용궁사 12지상. 사진 해동용궁사. |
[노트펫] 고대 동아시아인들은 땅을 수호하는 12마리의 동물이 있다고 믿었다. 대지의 수호천사들을 순서대로 열거하면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다. 우리말로는 쥐, 소, 호랑이, 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개, 돼지다.
그런데 21세기에 사는 현대인의 사고체계로는 12지지(地支)에서 얼핏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 상상속의 동물인 용이 포함된 것과 대표적인 반려동물인 고양이가 빠진 것이다.
용이 수호천사 무리에 있는 것은 고대인의 세계관에서는 당연한 것이다. 민주국가에서는 영원한 권력자나 권력집단은 없다. 아무리 탄탄한 권력 기반을 갖춘 집권당도 민생을 어렵게 하면 가차 없이 교체되는 게 순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대는 달랐다. 권력자는 하늘을 대신해서 백성을 다스리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민생이 힘들어도 지도자를 바꾸기는 힘들었다.
12지지가 만들어진 곳은 중국 상(商)나라나 주(周)나라로 추정된다. 그런 나라에서는 왕을 하늘의 아들인 천자(天子)라고 했다. 그래서 주나라를 종주국으로 모시는 춘추전국시대 백성들은 주나라 임금을 주천자(周天子)라고 불렀다.
용은 하늘의 권위를 상징한다. 그래서 임금은 용이 그려진 곤룡포(袞龍袍)를 입고 신하들의 보필을 받으며 정사를 돌보았다. 그러니 용은 존재하지 않는 동물임에도 불구하고 고대인들에게는 존재하는 동물이나 마찬가지였다.
12지지에서 용이 존재하는 것 못지않게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고양이의 부재다. 현대사회에서 고양이는 개와 동급인 반려동물이다. 하지만 12지지에는 개는 있지만 고양이가 없다. 분명 모순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기에는 쥐라는 동물의 농간이 숨어있다. 앙숙인 쥐 때문이다.
연말이 다가오자 하늘나라의 권력자 옥황상제(玉皇上帝)는 새해 첫날 자신의 궁전에 먼저 와서 인사하는 동물에게 후한 상을 내리겠다고 발표한다. 시상 대상자는 12마리였다.
그 발표를 전해들은 소는 걱정이 많았다. 자신의 걸음이 다른 동물들에 비해 느리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근면한 동물인 소는 고민 끝에 잠자는 시간을 줄이는 결단을 내린다. 모두가 잠든 밤부터 출발했다. 그 결과 소는 가장 먼저 궁에 도착한 동물이 되었다.
그런데 이는 소의 착각이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듯이 소의 등에는 쥐가 타고 있었다. 교통비도 내지 않고 무임승차한 쥐는 소가 궁에 도착하기 직전 소의 등에서 재빠르게 뛰어내려 가장 먼저 궁에 도착한 동물이 되었다. 그래서 12지간의 가장 앞에 있는 동물은 쥐가 됐고, 그 다음의 차례가 소가 되었다.
문제아 쥐의 농간은 여기서 끝나지 아니었다. 12지신에 고양이가 없는 이유도 쥐의 소행이기 때문이다. 평소 고양이를 싫어했던 쥐는 고양이에게 날짜를 고의로 잘못 알려주었다. 설날 다음날을 설날이라고 말한 것이다.
쥐의 말을 철석같이 믿은 고양이는 다른 동물이 상을 받고 이미 헤어진 다음날 궁에 도착한다. 12지간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지 못한 고양이는 모든 것이 쥐의 농간이라는 것을 알고 쥐에게 당한만큼 앙갚음을 해줄 것을 맹세한다. 고양이의 복수는 아직도 끝나지 않고 진행 중이다. 쥐를 철천지원수로 생각하는 고양이는 지금도 쥐가 보이면 바로 잡아버리고 있다.
옥황상제의 신년 파티 이야기는 누군가 재미를 위해 만든 가공의 이야기 일 뿐이다. 12지신에 고양이가 없는 것은 다른 동물에 비해 고양이가 동아시아에 늦게 전래된 것으로 보는 게 합리적이다. 고양이의 원래 고향은 북아프리카의 사막지대로 추정된다.
고대 이집트는 고양이를 신성한 동물로 여기고 외부 유출을 엄격히 금지하기도 했다. 그러한 역사적 이유로 다른 동물들에 비해 고양이가 동아시아에 도착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 것으로 보인다.
이강원 동물 칼럼니스트(powerranger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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