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펫] 회사 일에 시달리는 직장인에게 아무것도 하지 말고 집에서 하루 푹 쉬라고 하면, 그 어떤 금전적 보상보다 소중한 포상이 될 것이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은 한가함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는 복잡한 사회에서 격렬하게 사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일이다.
하지만 이런 한가함이 주는 행복을 아이들이 이해하기는 어렵다. 신체적 에너지가 폭발하고 지적인 탐구욕이 왕성한 아이에게 하루 종일 가만히 있으라고 한다면 분명 병이 날 것이다.
1970년대는 놀 것이 많은 지금과 다른 시대였다. 세계를 24시간 사통팔달(四通八達) 연결해주는 인터넷은 당연히 없었고, 하루 종일 방송하는 케이블 TV도 없었다.
당시 아이들은 주간과 어두운 야간에 하는 오락의 종류가 달랐다. 낮에는 구슬치기, 딱지치기, 말뚝박기, 자치기 등과 같이 신체를 사용하는 놀이를 주로 했다. 시멘트 바닥에 분필로 오징어를 그리고 서로 편을 나눠 건너가려고 했던 오징어게임도 단골 놀이였다.
밤이 되면 깨끗이 씻고 따뜻한 구들에 모여 어른들이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를 듣곤 했다. 이야기라는 콘텐츠도 좋았지만, 이야기의 재미를 돋우는 군밤이나 군고구마도 맛있었다.
어느 날 밤, 할아버지는 또 다시 호랑이 이야기를 꺼냈다. 할아버지는 1930년대 강원도 삼척 산골에서 청춘을 보냈다. 그러다보니 이야기 배경은 강원도 산골이 되었다.
당시 산골에는 야생동물들이 많아 집을 지키는 용도로 진돗개 체구의 개들을 키웠는데, 아침이 되면 마당에 있던 개가 밤새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 그런 일이 벌어지면 동네 사람들은 밤에 범이 내려왔다고 공포에 떨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날 밤은 평소보다 일찍 귀가한 아버지도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같이 들었다. 할아버지가 개를 납치한 맹수의 정체를 호랑이라고 결론 내리자, 아버지는 호랑이가 아닌 표범 같다면서 반박했다. 기자 출신인 아버지의 반론은 어린이의 귀에는 사뭇 논리 정연하게 들렸다. 아버지의 반박 근거는 시기와 은신의 달인인 표범이라는 동물의 생물학적 특징이었다.
첫째, 남한에서 호랑이는 이야기의 배경보다 먼저 멸종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므로 호랑이가 아닌 다른 맹수일 가능성이 높다.
글을 작성하기 전에 인터넷을 뒤져보니 1922년 경주 대덕산의 호랑이가 마지막 남한 호랑이라고 한다. 참고로 1962년 경남 합천에서 표범이 포획되었다고 하니, 아무래도 당시 개를 잡아간 범인의 정체는 호랑이보다 표범일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둘째, 개가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끌려갔다고 하는데,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는 동물은 표범일 가능성이 높다. 표범은 그 누구보다 몸을 잘 숨기는 은신의 달인이고, 강력한 턱을 가지고 있다. 지금도 인도에서는 떠돌이개의 가장 위협적인 포식자는 표범이라고 한다.
당시 개를 해친 맹수의 진실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여러 정황상 아버지의 분석처럼 표범일 가능성이 높은 것 같다. 호랑이던, 표범이던 지금은 사라진 대형 고양잇과동물이지만 불과 100여년 전만해도 우리 주변에 존재하던 맹수였다.
동물인문학 저자 이강원(powerranger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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