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펫] 외상을 제때 치료하지 않는 바람에 턱관절이 굳어 입을 제대로 벌리지 못한 채 버려진 고양이에게 새 삶을 찾아주겠다고 기꺼이 나선 수의사들이 있다.
지난 10월 초 경기도 성남의 한 동물병원. 한 보호자가 빌라 꼭대기 층에서 발견했다며 흰털에 군데군데 갈색털을 가진 고양이를 데리고 왔다. 페르시안 고양이로 나이는 1살 반 정도로 추정됐다.
나온지 좀 됐는지 꼬질꼬질한 모습에 여기저기 곰팡이성 피부 병변도 확인됐다. 품종묘라 '주인이 이 녀석을 찾겠지'하는 생각에 곰팡이를 치료하면서 며칠 데리고 있기로 했다. 동네에서 잃어버린 고양이 정보를 찾다가 마침 비슷한 고양이를 찾고 있다는 글을 보고 댓글을 달았으나 연락은 오지 않았다.
그러다 직원의 말에 버려졌음을 직감했다. 고양이가 입을 벌리지 못한다는 거였다. 겨우 엄지 손가락 하나 눕혀 들어갈 만큼만 벌어졌다. 그래서 밥을 먹을 때 흘리는 것이 더 많아 한참을 먹었던 거였다.
단두종 페르시안이라 그런 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던게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교합이 맞지 않아 닫지도 못하고 항상 그렇게 벌리고 있었다. 이렇게 아픈 경우 고양이 찾는다는 이가 보호자가 맞더라도 추궁해서 데려가게끔 해봐야 다시 유기할 가능성이 컸다.
아직 두 살도 안된 어린 고양이, 치료해 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우선 소유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성남시 위탁 동물보호소에 입소시키고 입양 대기 1순위로 걸어놨다. 혹시나 이 기간 찾아갈까 기대도 해봤지만 역시나 헛기대였다. 그 직감이 맞았다.
공고 기한이 지나면서 바로 다시 병원으로 데려왔다. 분명 구강에 이상이 생긴 고양이. 구강 구조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CT 촬영이 필요했고, 그러고 난 뒤 경우에 따라 외과적 처치도 필요할 것으로 판단됐다.
1인 동물병원의 한계 때문에 외부의 도움이 절실했다. 주변 지인 수의사들한테 고민을 털어 놓으니 다들 흔쾌히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턱관절 이상이라 수술 설계를 하려면 3차원 CT 영상이 필요했다. 성남의 휴동물의료센터에서 CT를 찍어 영상 판독까지 해줬다. CT 결과를 받아 이번엔 동물치과 구강외과를 전문으로 하는 동물치과병원 메이의 원장과 상의했다.
메이에서는 외상에 의해 턱관절 이상이 생겼다면서 턱관절 부위의 골증식이 심하고 양쪽 턱관절이 이상이 있어 수술 후에도 완벽하게 턱이 벌어지기는 힘들 것같다고 했다. 그렇지만 수술은 가능하다면서 데리고 오라했다.
동물병원 역시 전문 과목 병원들은 예약이 밀려 있어 처음에는 빨라야 12월 중순 쯤이나 수술이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진료 예약 하나가 취소되면서 지난 11일 수술이 진행됐다. CT 촬영부터 수술까지 일사천리였다.
'랑자'가 이 고양이에게 붙여준 이름이다. 옥상을 '방랑'하고 있다고 해서 이렇게 지어줬단다. 랑자는 수술을 받고 회복도 잘 되면서 이제 입을 벌릴 수 있게 됐다. 완벽치는 않지만 밥을 전보다 잘먹고 밥을 먹을 때 흘리는 양도 확실히 줄었다. 농담삼아 '먹깨비 고양이'라고 부를 정도다.
그리고, 넥칼라를 한 채 병원 곳곳을 탐색하면서 다른 터줏대감 고양이에게 애교를 부리기도 한단다. 현재 상태도 생활하는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 다만, 골증식성 병변이었기 때문에 다시 굳을 수 있고 꾸준한 재활이 필요하단다.
처음 도움을 요청할 때부터 가진 생각대로 랑자는 동물병원에서 지내게 된다. 랑자처럼 알게 모르게 불쌍한 동물들을 치료해서 입양을 보내거나 키우는 수의사들이 많다.
수의사는 "랑자에 대한 고민을 털어놨더니 두 곳 모두 흔쾌히 도와주겠다고들 했다"며 선뜻 나서준 수의사 동료들에게 감사를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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