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와빠루] 제 21부
[노트펫] 어릴 적 살던 동네의 어귀에는 다른 집들보다 훨씬 큰 집이 하나 있었다. 그 집은 필자와 등하교를 같이 하던 같은 친구의 집이었다. 그 집은 큰 덩치 외에도 몇 가지 특이한 점이 있었다. 대문에 큰 글씨로 ‘맹견조심’이라는 경고판을 떡하니 붙여 놓은 게 가장 인상적이었다.
1970년대에는 그런 문구를 붙인 집이 많았다. 문제는 그런 집 치고 덩치 큰 맹견이 있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기껏해야 스피츠견 빠루 정도의 체구를 가진 중형견일 뿐이었다. ‘맹견조심’은 좀도둑 방지를 위한 1970년대식 허세(虛勢)의 전형이라 할 수 있었다.
2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친구는 무화과를 같이 먹자며 자기 집으로 초대했다. 무화과를 먹어 본 경험이 없던 필자는 전날 밤 잠이 쉽게 오지 않을 정도로 흥분했다.
그런데 친구의 집에 들어간 순간 무화과가 아닌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의 큰 개에 온 신경이 곤두서게 되었다. 대문에 붙은 그것도 진한 붉은 글씨로 크게 쓴 맹견조심은 허세가 아니었다. 마당에는 도사견(土佐犬) 한 마리가 당당히 어린 손님을 노려보고 있었다. 친구가 온다는 얘기를 어머니에게 미리 해두어서 개는 목줄을 한 상태였다.
개는 어지간한 성인 남성보다 더 컸다. 외부인의 출입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엄청난 성량(聲量)으로 두 번 짖었다. 쩌렁쩌렁하게 울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려주는 것 같았다. 결국 어머니가 마당에 나와 짖는 것을 제지시키자 개는 손님에 대한 관심을 끊었다.
친구에게 물어보니 자기 집 개는 좀처럼 짖지 않는다고 했다. 접시에 담긴 무화과 하나를 건네주면서 친구는 “원래 겁이 많은 개가 시끄럽게 짖는다.”면서 자기 집 개에 대한 자랑을 했다. 약간 으스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과즙이 가득한 무화과를 한 입 베어 물었다. 빠루는 심심하면 짖어댔는데, 그 울음에는 주인에게 밖의 무서운 일을 대신 처리해달라는 의미가 담긴 것 같다는 생각을 처음 해보았다.
무화과와 빵을 실컷 먹고 귀가하려는데, 친구 어머니가 누런 종이봉투에 무화과를 한가득 담아주셨다. 우리 가족들에게 맛을 보라고 한 것이다. 사실 아까부터 혼자 무화과를 먹는 것이 양심에 찔렸다. 너무 기쁜 마음에 친구의 집에서 우리 집까지 단숨에 내달렸다.
귀가하니 빠루가 달려들었다. 집에 올 때마다 열렬한 환영식을 벌이는 빠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순간 우리 집의 대문에 붉은 페인트로 ‘맹견조심’이라고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참았다. 말이 되지 않는 일을 벌였다가 자칫 동네 망신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동물인문학 저자 이강원(powerranger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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