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와빠루] 제 24부
[노트펫] 며칠 전 새벽, 현관에 보관 중이던 생수를 꺼내기 위해 중문을 열었다. 뭔가 좋지 않은 냄새가 콧구멍을 통해 들어왔다.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를 키운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익숙한 냄새였다.
악취 제거를 위해 냄새의 근원을 찾아 나섰다. 어젯밤 제일 늦게 귀가한 식구는 큰 아들이었다. 아들의 신발은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하는 대상이었다. 예상은 적중했다. 왼쪽 신발에 뭔가 이상한 물질이 묻어있었다. 신발을 들고 곧장 화장실로 갔다.
화장실에는 청소용으로 사용하던 솔과 철로 된 수세미가 있었다. 비누 거품을 풀어 솔로 박박 문질렀다. 신발을 세척하며 얼굴에 비눗방울이 튀었다. 자기 운동화도 잘 빨지 않는 사람이 자식의 신발을 빠는 게 이상했다.
‘그래도 자식이니 군말 없이 이런 궂은일을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손등으로 얼굴에 묻은 비누거품을 닦았다. 문득 작고하신 할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비슷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40여 년 전 방과 후,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주인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던 스피츠 강아지 빠루와 공놀이를 했다. 테니스공을 벽에 던지면 빠루가 손살 같이 그 공을 물고 와서 주인 앞에 놓는 게임이다. 스피츠보다는 골든 리트리버나 래브라도 리트리버에게 적격이다.
그런데 빠루와 놀다가 발밑에 이상한 감촉이 느껴졌다. 뭔가를 밟았을 때 느끼던 그런 기분이었다. 문제는 학교 갈 때 신는 신발은 그 신발뿐이었다는 점이었다. 순간 머릿속이 노랗게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마당에 있는 평상에서 신문을 보던 할아버지에게 화풀이를 했다. 빠루의 배설물을 왜 치우지 않았냐면서 화를 냈다.
당시 할아버지에게 일상의 즐거움 중 하나는 오후에 배달되는 석간신문을 보는 것이었다. 갓 윤전기를 통과한 석간신문을 오후 햇볕 잘 드는 평상에서 보는 것은 할아버지에게 하루 중 제일 행복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지금처럼 인터넷, 보도채널 등이 있던 시절이 아니었으니 어른들이 세상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창구는 제한적이었다. 그날 할아버지의 작은 행복은 버릇없는 손자의 철없는 행동으로 깨지고 말았다.
할아버지는 황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 말도 없이 신발을 들고 마당에 있던 수돗가에 가서 깨끗이 빨아주었다. 그리고 “내일 이 신발 또 신고가야하지?”하며 부엌에 있는 아궁이 옆으로 신발을 가지고 갔다.
잠시 후 부엌에서 나온 할아버지는 빠루의 배설물을 치우고, 다시 신문을 보기 시작했다. 약간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이의 그런 기분은 오래 가지 않았다. 슬리퍼로 갈아 신은 필자는 마당에서 빠루와 다시 신나게 놀았다. 다음날 아침, 손자는 깨끗하고 뽀송뽀송한 운동화를 신고 기분 좋게 등교했다.
지금도 그날 일을 생각하면 할아버지에게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뿐이다. 손자는 돌아가신 할아버지에게 효도를 하고, 은혜를 갚고 싶어도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명절 때 차례를 지내는 것 외에는 없다. 그게 슬프기 만한 현실이다.
*동물인문학 저자 이강원(powerranger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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