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와빠루] 제48부
[노트펫] 독서가 취미생활의 대명사였던 시절이 있었다. 필자가 어린 시절을 보낸 1970년대가 그랬다. 지금은 누구나 한 대씩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은커녕 ‘백색전화’라고 불렸던 유선전화도 집집마다 있지 않았다.
전화가 없는 집은 급한 일이 생기면, 전화가 있는 이웃집에 아쉬운 이야기까지 해야만 했다. 많은 나라들의 드라마와 영화가 넘치는 OTT 채널은 그 시절 언감생심 꿈에서 조차 상상하지 어려웠다. 방송 시간도 제한되던 시절이니 더 말할 필요도 없다.
1970년대 이야기꺼리 요즘 말로 콘텐츠에 대한 갈증을 푸는 방법은 독서가 대세였다. 서재에 세계 문학이나 위인전 전집이 책장에 있으면, 문화생활을 즐기는 지식인이라는 표시였다.
여름방학을 목전에 둔 초등학교 3학년 1학기였다. 숙제도 마치고 할 일이 없었다. 서재에 간만에 들어갔다. 아빠가 얼마 전 사놓은 다양한 종류의 전집이 보였다. 부담스러웠다. 제목도 어렵고, 책 두께도 두꺼워보였다. 그때 책 한 권에 시선이 갔다. ‘15소년표류기’, 구미가 당겼다.
책을 들고 마당의 평상에 털썩 앉았다.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계속 되었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책장을 넘겼다. 손자가 뜻밖의 행동을 하니 할아버지가 놀라셨다. 다음날 할아버지는 귀가한 손자를 보며 어제 손자가 읽었던 책 이야기를 하셨다. 할아버지의 호기심을 끈 것 같았다.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다 마당에서 노는 고양이 나비와 스피츠 강아지 빠루를 보았다. 무인도에 생존을 위해 동물을 데리고 갈 수 있다면 어떤 동물을 데리고 가야 하는지 할아버지의 고견을 듣고 싶었다. 할아버지는 모르는 것이 없는 백과사전이니 정답을 알려주실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먼저 소를 데리고 가야 한다고 했다. 무인도 땅이 아무리 거칠어도 소만 있으면 농사짓기 좋은 땅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소똥을 퇴비로 만들면 땅이 더 비옥해진다는 이야기까지 덧붙였다. 도시소년이 비료에 대한 지식이 있을 리 없었다. 냄새나는 소의 똥이 어떻게 땅을 비옥하게 만드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요즘 말로 ‘기적의 논리’ 같았다.
다음은 예상대로 개와 고양이였다. 먼저 개가 있으면 무인도에서 사냥을 할 수 있고, 야생동물의 침입도 미리 알 수 있다. 고양이는 힘들게 농사지은 것을 쥐에게 빼앗기지 않게 해준다는 것이다.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에 어떻게 쥐가 있는지 궁금했지만, 할아버지는 지금까지 쥐가 없는 섬은 본 적이 없다며 고양이는 생존에 필수적인 동물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할아버지가 무인도에 꼭 데려갈 동물은 닭이었다. 그런데 무인도에 가면 도시와 달라 직장이나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기에, 살아있는 기상나팔인 닭이 필요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닭을 데려 가려는 할아버지의 주장은 단호했다. 사람은 적절한 수준의 단백질을 매일 먹어야 하는데, 무인도에서 정기적으로 먹을 수 있는 방법은 달걀밖에 없다고 했다. “생선을 먹으면 된다.”고 항변했지만 할아버지는 물러서지 않았다.
생선은 하늘과 바다가 같이 허락해야 잡을 수 있기 때문에, 그것만 믿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비바람이 심하게 불거나 태풍이 일면 고기를 잡다가 사람이 다칠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마치 무적의 백과사전 같았다.
*동물인문학 저자 이강원(powerranger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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