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와빠루] 제 51부
[노트펫] 진정한 낚시꾼이라면 작렬하는 햇볕에 온 몸이 땀으로 젖어도, 얼굴이 뻘겋게 익어도 개의치 않는다. 생리적 현상까지 참으며 입질이 좋은 자리를 꿋꿋이 지킨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손맛을 놓치지 않기 위함이다.
손맛의 사전적 의미는 ‘낚싯대를 잡고 있을 때, 고기가 입질을 하거나 물고 당기는 힘’이다. 찰나(刹那)에 불과한 그 짜릿한 손맛을 느끼기 위해 낚시꾼은 하루 종일을 투자한다. 필자 같은 낚시 문외한의 눈에는 이해가지 않는 수고일 뿐이다.
와인은 소주, 맥주와 별반 다르지 않는 국민 주종으로 이미 자리잡았다. 그런데 와인은 비교적 맛이 단순한 다른 술과는 달리 다른 술과는 달리 스펙트럼이 넓다. 레드, 화이트 같은 시각적으로 확연한 차이가 느껴지는 것은 물론, 입안에서의 묵직한 느낌인 무게감의 차이로도 구분 가능하다.
와인 매니아들은 입에서 느끼는 와인의 묵직함을 바디감이라는 멋진 신조어를 만들어 설명한다. 바디감이 있는 와인은 한 잔 머금으면 골프공 같이 기분 나쁘지 않는 무거움을 주기도 한다. 그런데 바디감은 비단 와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현대인이라면 하루에 한두 잔은 기본인 커피에도 사용되기 때문이다.
낚시꾼의 손맛이나 커피나 와인 매니아의 바디감은 평범하지 않은 묵직한 느낌이라는 공통점을 가진다. 그런데 필자는 낚시를 하거나 커피나 와인을 마시기에 어린 나이인 열 살도 되기 전부터 개를 키우면서 그런 묵직한 경험을 하고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개라는 동물은 사람과 해부학적 차이가 있다. 사람은 손이 두 개, 발이 두 개지만, 개는 발이 네 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다름에도 불구하고 자기 개의 앞발을 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분명 모순(矛盾)이지만, 그건 필자도 마찬가지였다.
어린 시절 방과 후 집에 오면 할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먼저 인사를 하고, 스피츠 강아지 빠루를 찾아 ‘손’ 훈련을 했다. 빠루에게 손바닥을 내밀며 ‘손’이라고 하면 빠루는 거의 예외 없이 자신의 앞발을 그 위에 살포시 내밀었다. 그러면 한 손으로 빠루의 앞발을 잡고, 다른 손으로는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물론 빠루도 다른 개처럼 손이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앞발’이 주인이 말하는 그 ‘손’임을 알기에 무난하게 미션을 수행할 수 있었다. 주인의 어리석은 명령에도 빠루는 현명하게 대응한 셈이다. 우문현답(愚問賢答) 그 자체다.
빠루가 은하수 너머 주인이 사는 세상과는 다른 세상으로 건너갔을 때 가장 슬펐던 것은 그 손이 주는 행복을 더 이상 느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빠루의 손은 아이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손맛이었고, 제일 행복한 바디감이었다.
*동물인문학 저자 이강원(powerranger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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