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펫] 엉망이 된 고시원 안에 몇 주째 방치돼 있던 고양이의 구조 당시 모습이 마음을 짠하게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그리웠던 이 녀석은 문이 열리자마자 사람 품에 와락 안기며 반가움을 표시했습니다.
지난달 25일 점심 무렵 서울시 관악구 대학동의 한 고시원. 고시원 안에 몇 주 째 고양이가 방치돼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맡아주겠다고 나선 임시보호자 일행이 방 앞에서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습니다.
전날 구청 복지담당 공무원이 취약계층 점검차 나왔다가 고시원 주인으로부터 연락이 두절된 세입자와 세입자가 키우던 고양이 이야기를 들으면서입니다.
고시원 주인은 공무원에게 몇 주 전 세입자가 자신은 병원에 있다면서 방에 둔 고양이를 유기동물보호소에 보내라는 문자를 끝으로 연락이 끊겼다며 어찌해야 하느냐고 하소연했습니다.
공무원이 방에 가보니 고양이가 좁은 방 안에서 밥도 못 먹고 굶고 있었죠. 반려동물을 금지해왔던 고시원 주인은 당장이라도 고양이를 내보내고 싶다며 좋은 데로 입양가면 좋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주인은 굶어죽지 않을까해서 밥은 줬던 듯한데 한시라도 빨리 보냈으면 하는 눈치였습니다.
공무원은 구조가 급하다고 보고 사연을 공유했고, 사연이 고양이 네트워크를 타고 퍼지면서 장기 임시보호를 결심한 청강문화산업대학교의 한 교수님이 고시원에 직접 찾아왔습니다.
교수님은 강사 시절부터 함께한 고양이 '맥주'와 청강대학교 안에서 비맞고 울고 있던 새끼 고양이였다가 지금은 훌쩍 큰 '애기'까지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고 있습니다.
교수님이 고시원의 문을 열자마자 겁에 질린 고양이가 튀어나와서 품 속에 폭 안겨왔습니다. 고양이를 살펴보는 사이 지린 내와 담배 냄새가 코를 찔러왔는데요. 눈을 들어 살펴보니 방안은 쓰레기로 엉망이었고, 벽에는 온통 곰팡이 투성이였습니다.
폭우 때문에 물난리가 났던 바깥. 고시원 방은 습기에 방치되면서 그렇게 엉망이었습니다. 고양이의 배설물까지 그대로 방치되면서 냄새는 더욱 심해진 상태였고요. 단 1초라도 빨리 그곳을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들게 했는데요. 그런 방안에서 고양이는 밝아졌다 어두워졌다하는 창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몇 주를 버텨온 것이었습니다.
3살 가량의 페르시안 친칠라에 가까운 암컷 고양이었습니다. 데리고 나온 직후 간 병원에서는 간 수치가 좋지 않다며 약을 내줬습니다. 좀 더 두고봐야겠지만 그 이상의 이상이 발견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습니다.
다롱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이 녀석. 교수님은 원래 장기 임시보호를 생각했는데요. 어느새 그 의지가 약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평생 보호쪽으로 말이죠. 품 속에 폭 안겨오던 첫 만남의 순간이 너무나 강렬했습니다. 며칠 지켜보니 이 녀석 순둥순둥하고 헤어졌던 고양이를 다시 만난 듯한 느낌까지 줄 정도로 애교 덩어리였습니다.
배달 음식을 받기 위해 문을 열자 다롱이는 후닥닥 침대 아래로 숨었습니다. 고시원에서는 문 열리자마자 튀어나와 누군지 확인하지도 않고 안겼던 녀석이 어느새 자기 장소, 낯익은 사람, 낯선 사람을 구분하려는 것같았습니다. 첫날부터 침대에 대자로 누워 자는가하면 고양이답게 책상 위에 올라와 일하는 교수님을 훼방놓는 일도 며칠 만에 시작됐습니다.
손을 내밀자 쓰다듬어 달라고 다가와선 두 발로 겅중겅중하는 모습도 빼놓을 수 없었습니다. 강아지나 하는 줄 알았던 애정 표현을 고양이가 할 줄이야. 터줏대감인 맥주와 애기에게서는 받아보지 못했던 개냥스러움이었죠. 한 번은 잠결에 울길래 쓰다듬어 주다 다시 잠에 들었는데 깨고보니 어느새 교수님의 손을 머리 위에 얹고서 자고 있기도 했습니다. 껌딱지나 다름 없는 행동이었죠.
무엇보다 처음에 걱정했던 맥주, 애기와의 합사도 연착륙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합니다. 종종 기싸움을 벌이면서 먼 발치에서 노려보기도 하지만 그 때 뿐. 격하게 서열 쟁탈전을 벌이거나 두 녀석이 다롱이를 구석에 밀어부치는 등의 행동은 하지 않으니까요.
교수님은 "장기임보를 해 본 적이 없으니 처음부터 '내 고양이는 아니다'라는 마음가짐이 매우 중요하단 걸 몰랐다"며 "'다롱이는 내 꺼야. 아무에게도 줄 수 없어. 내 고영이야'라는 게 현재 상태"라고 흐뭇해했습니다.
이제 집에 온 지 채 일주일이 되지 않은 다롱이. 종종 과거의 생활을 못잊어하는 모습도 보여줘서 안쓰럽게 하고 있는데요. 집에 데려온 첫날 아무 것이나 잘 먹던 녀석이 며칠이 지나자 사료는 물론이고 고양이들의 최애 간식 '츄르'도 입에 대기를 거부했습니다. 과거 집사와 살던 집이 아님을 깨달은 듯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밤에 침대 아래에서 잠을 자다가 신음하더니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습니다. 부르고 나서야 침대 위로 올라와 다시 잠에 빠져 들었습니다. 달라진 환경에 낯설어 하는 모습이 어쩌다 이렇게 튀어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누군가는 다롱이가 품에 안기던 순간 '이미 게임이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고 응원하기도 했는데요. 다롱이가 '임시보호'에서 '임종까지 보호'로 급격히 마음이 기울어버린 교수님, 그리고 맥주, 애기와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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