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와빠루] 제 58부
[노트펫] 젊은 시절 진돗개를 키우셨던 할아버지는 대단한 ‘진돗개 예찬론’자였다. 외출 중에 진돗개를 보기라도 하면 “예쁘지 않냐?”, “멋있지 않냐?”고 몇 번씩 손자에게 물어보곤 했다. 물론 할아버지의 답을 몰라서 손자에게 물으신 것은 아니었다. 답은 이미 “네, 맞아요.”라고 이미 정해져있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진돗개를 일반적인 개와는 다른 차원의 영물(靈物)이라고 생각했다. 진돗개가 가진 예민한 감각 능력, 뛰어난 사냥 실력, 멋진 외모도 훌륭하지만, 주인에 대한 변치 않는 충성심이야말로 진돗개만의 특장의 시그니처라고 생각했다.
할아버지가 키웠던 진돗개는 가족들의 건강을 위해 달걀을 매일 낳았던 암탉을 지키고, 동네의 담벼락을 종종 넘었던 좀도둑의 활동을 막아준 수호천사였다.
진돗개의 활약 덕분에 할아버지는 족제비에게 빼앗겼던 달걀을 더 이상 잃지 않게 되었고, 밤이면 조그마한 소리에도 잠을 설치기 일쑤였던 피곤함도 사라지게 되었다.
아이들은 일은 쉽게 저지르지만, 그 일이 초래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거나 모르는 척한다. 하굣길 학교 앞에서 샀던 병아리를 키우는 문제도 마찬가지였다. 필자는 초등학교 3학년 시절 다섯 마리의 병아리를 사서 종이봉투에 담아 집에 가지고 왔다.
하지만 그 뒤의 일은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지 전혀 몰랐다. 당시 할아버지는 손자가 사고를 치면, 이를 수습하는 전담반과 같았다. 왕년의 솜씨를 발휘해서 닭장을 만들고, 병아리를 키우셨다. 할아버지에게는 일거리 하나가 늘어난 것과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귀가 후, 오랜 만에 마당에서 병아리들과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숫자가 맞지 않았다. 하나가 비었기 때문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어서 스피츠 빠루의 집에 가보니, 병아리 한 마리가 보였다. 하지만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
잠시 후 할아버지가 시장에서 오셨다. 물론 할아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빠루가 할아버지의 부재를 틈타 닭장을 공격해서 병아리 한 마리를 물어간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탄식을 하며 빠루에게 “옛날 진돗개는 닭장을 지키기 위해 족제비와도 싸웠지만, 너는 대체 왜 그러냐?”는 말씀만 할 뿐이었다. 할아버지는 잠시 후 “모든 잘못은 닭장을 보다 튼튼하게 짓지 못한 내 탓이다.”면서 다시 망치를 들고 닭장을 개보수하셨다.
저녁식사를 하며 할아버지는 상심한 손자에게 “이번 일을 계기로 빠루를 미워하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빠루는 생후 2개월 만에 너희 엄마 품에 안겨 우리집에 왔는데, 우리 가족이 자신을 미워하면 세상 어디에 정을 붙이며 살겠냐.”고 하셨다.
식사를 마치고 빠루에게 갔다. 낮에 병아리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물어 불같이 화낸 꼬마 주인 때문에 빠루도 놀란 눈치였다. 빠루라는 이름을 정답게 불러주었다. 빠루는 주인의 손을 핥으면서 안겼다.
태어나서 처음 빠루에게 화를 냈던 게 속상하고 미안했다. 흐르는 눈물을 닦으면서 마음속으로 “빠루야, 미안하다. 다시는 화내지 않을게.”라고 약속했다. 그리고 그 약속은 빠루의 생명이 다할 때까지 끝까지 지켰다.
*동물인문학 저자 이강원(powerranger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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