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와 빠루] 제 62부
[노트펫] 초등학교 2학년 때에 있었던 일이다. 할아버지는 그날도 마당의 평상에 않아 전날 배달된 석간신문을 읽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리 나비가 어디 있지?” 하시면서 “나비야”하고 부드럽게 고양이를 불렀다.
담벼락 끝에서 아슬아슬한 자세로 바깥세상의 움직임을 관찰하던 나비는 마치 우사인 볼트와 같은 비슷한 속도로 할아버지 옆으로 왔다. 그리곤 자신의 머리를 할아버지의 바지에 문질러댔다. 누가 보더라도 할아버지에게 애교를 부리는 것이다.
그 장면을 보며 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나비는 내가 부르면 잘 오지도 않지만, 할아버지가 부르면 냉큼 달려오는 것도 이상하고, 애교가 거의 없던 나비가 어떻게 저렇게 온갖 귀여운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인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바로 그때 할아버지는 당신의 주머니에서 멸치 한 마리를 꺼냈다. 물론 나비를 위한 것이었다. 나비는 주인의 하사품을 주저하지 않고 냉큼 입에 물고 맛있게 먹어치웠다. ‘저게 정답이었군.’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1970년대 초는 사람이 먹을 것도 여유롭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흔한 개나 고양이 사료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당시 나비에게는 할아버지 주머니에서 나오는 멸치 한 마리도 매우 소중한 영양 간식이었을 것이다.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의 슈퍼 히어로들은 지상을 어지럽히는 악귀들을 척결한다. 그들은 돈벌이가 목적이 아닌 사람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 국수집을 차려 놓고, 이를 사무실로 사용한다. 그런데 의심을 사지 않으려면 아무래도 국수집이 맛집으로 유명세를 떨쳐야 좋다. 사람은 물론 귀신도 속이기 위해서는 그럴 필요가 있다.
국수는 육수가 핵심이다. 퇴마사들의 선택은 멸치 육수였다. 한국인치고 국수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쫄깃하게 삶은 국수, 그 위에 수북이 쌓인 맛있는 고명, 파가 듬뿍 들어간 빨간 양념장, 그리고 맛있는 육수가 더하면 없던 입맛도 사는 법이다.
어머니는 잔치국수를 만들 때면 ‘경이로운 소문의 주인공들처럼 멸치 육수를 사용했다. 그런데 맛있는 육수를 만들고 나면 부수적으로 많은 양의 멸치가 버려지기 마련이다. 아깝긴 해도 국물을 빼낸 멸치는 맛이 없고, 식감도 좋지 않아 식용으로 사용하기에 부적합하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나비에게 준 멸치는 육수를 우려내고 남은 게 아니었다. 할아버지는 나비는 입맛이 까다로워 맛있는 국물이 빠져나간 멸치는 거들떠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니 나비의 고급 입맛을 맞추기 위해서는 국물을 우려내기 전의 멸치만 주었다.
지난 주말 점심 멸치 육수를 내어 오랜 만에 잔치국수를 먹었다. 국물을 마시며 맛있는 멸치로 나비의 마음을 사로잡은 할아버지와 자신의 입맛에 맞는 멸치를 가지고 오도록 할아버지를 움직이게 했던 나비가 생각났다. 할아버지도 계셨고, 나비도 있었던 그 시절이 좋았는데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동물인문학 저자 이강원(powerranger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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