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동물병원에 방문하는 질환 1위는 무엇일까요? 바로 고양이 특발성 방광염, 다른 말로는 판도라 증후군입니다. 고양이가 소변을 볼 때 피가 섞여 나오거나 고통을 느끼는 것이 주요 증상이고 종종 화장실 밖에 소변을 보기도 합니다.
소변 문제가 가장 확연하게 나타나긴 하지만 위장, 피부, 신경 등에 다양한 증상이 동반되는 경우가 흔합니다. 건강에 작은 틈새라도 생기면 온갖 증상이 나타났기 때문에 '판도라' 증후군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습니다.
이상하게도 이 질환은 전염병이 아님에도 도시 전체에 창궐한 사례가 많습니다. 이를 연구하는데 평생을 바친 오하이오주립대학교 수의사 '토니 버핑턴'에 따르면 이 병은 오랫동안 고양이의 주요 사망 원인 중 하나였다고 합니다. 질병 자체는 치명적이지 않지만, 집안 가득한 소변 냄새에 질린 주인들이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안락사를 택했기 때문입니다.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이 지금과는 많이 달랐던 1900년대의 이야기입니다.
판도라 증후군은 오랫동안 하부 요로의 이상이 그 원인으로 여겨졌습니다. 버핑턴은 연구를 위해 이 병에 걸린 고양이들을 모집했습니다.
첫 연구대상은 매일 카펫에 소변을 보고 신경질적인 행동을 보이던 얼룩무늬 페르시안 고양이 '타이거'였습니다. 타이거를 비롯한 여러 고양이들이 연구실 내 스파르타식 시설에 수용됐습니다. 폭 1미터의 좁은 우리 안에 살면서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사람이 주는 간단한 식사를 했으며 장난감으로 가득한 공용 복도에 정기적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이제 이 불가사의한 질병을 어떻게 연구할 것인가 고민을 시작하던 찰나,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고양이들이 다 나아버렸습니다. 연구시설에서 약 6개월간 생활하면서 요로 질환은 물론 호흡기 및 수많은 잡다한 질환이 깡그리 사라졌습니다. 어떤 약물 치료도 필요 없었습니다. 고양이들의 건강 상태는 연구 시설에 머무는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한때 못말리는 냥아치였던 타이거는 너무나 사랑스러운 고양이로 변해 여생을 시설 안에서 살았습니다.
버핑턴은 우연히도 치료법을 찾았고 원인도 유추해냈습니다. 치료법은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1970년대의 영국이나 1990년대의 부에노스아이레스처럼 이 질환이 집단적으로 창궐한 지역은 대개 그 당시 빠른 도시화 과정을 겪고 있었습니다. 도시로 이주해 온 사람들이 아파트에 살기 시작하면서 고양이들이 철저한 실내 생활에 적응해가던 시기였습니다.
그렇다면 버핑턴이 연구 목적으로 마련했던 폭 1미터 남짓한 공간이 아파트 거실보다 더 좋았다는 걸까요? 버핑턴의 말에 따르면, 그렇다고 합니다.
"고양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이라는 사실을 발견했어요."
고양이와 함께 살기 위해 사람은 말 그대로 집사가 되어야 합니다. 일반적인 믿음과 달리 고양이가 키우기 편한 동물이 아니라는 점을 깨닳아야 합니다. 사료만 쌓아두면 긴 시간 집을 비워도 잘 지낼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고양이는 우리가 집을 마음대로 오가기보다 훈련받은 집사처럼 엄격한 규칙에 따르기를 바랍니다.
예를 들면, '저녁'에 밥을 주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시간을 철저하게 지켜야 합니다. 8시에 밥을 주기로 했다면 6시나 10시에 주면 안됩니다. 15분 정도만 앞당기거나 미룰 수 있을 뿐입니다. 그 이상 차이가 발생하면 고양이는 안절부절 못하게 됩니다.
또 고양이는 자기 몸에 대한 통제권이 스스로에게 있다고 느껴야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버핑턴이 연구대상으로 삼았던 판도라 증후군을 앓는 고양이들의 주인은 대개 사랑이 넘치는 성격이었다고 합니다. 안락사를 선택하기보다 수의사에게 큰 치료비를 지불하고 공존을 모색하는 쪽이었습니다.
그러나 때로 과도한 애정은 문제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고양이를 쓰다듬고 싶어 침대 밑에 숨어있는 고양이를 끌어내 껴안으면 고양이는 위협을 느낄 수 있습니다. 버핑턴의 말에 따르면, 그럴때 고양이는 우리를 기이한 포식자로 여길 수 있다고 합니다. 본격적인 식사를 하기 전 먹이를 가지고 한참 장난을 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저는 고양이를 일부러 학대하려고 한 주인을 만난 적은 없어요. 하지만 가족과의 관계를 의도치 않게 망쳐버리는 사람은 아주 흔합니다."
버핑턴은 '실내 고양이를 위한 계획'이라는 온라인 프로젝트를 통해 주인의 여러 결점을 진단하고 수정해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고양이들이 있는 힘을 다해 보여주는 작은 시그널을 해석하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고양이가 말 못하는 짐승이 아니라, 우리가 그 말을 못 알아듣는 짐승이라는 가정하에 고양이의 언어를 가르칩니다.
톨스토이가 말하길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고 합니다. 불행한 고양이 역시 각기 다른 이유로 불행합니다. 때문에 우리는 개별 고양이가 마주하고 있는 문제를 고려해야 합니다. 다른 생명체의 언어를 배우고 그들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는 선물같은 능력을 갖춘 인간에게 좀 더 큰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집사가 되는 길은 어렵지만 분명 가치가 있는 일일 것입니다.
참고자료
Abigail Tucker, The Lion in the Living Room, 2018
※ 위 정보는 2024년 12월에 작성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방문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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