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자식을 죽음으로 내몬 부모들의 얘기가 잇따라 전해지고 있다. ‘자식도 인격체이거늘, 학대의 차원을 넘어 살인이라니’, 그 참혹한 결과에 가슴이 먹먹해지고, 말문도 막힌다. 문제는 이 같은 일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경찰청의 사건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부모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아동이 매달 2~3명에 이른다고 한다.
‘예언자’로 유명한 칼릴 지브란은 그의 또다른 시 ‘아이들(Children)’을 통해 “아이들은 당신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당신을 통해 태어났지만 당신에게 속해 있지 않습니다.”라고 말한다. 이 표현에 절대 공감하지만 왠지 공허함마저 느껴지는 요즘이다.
얼마 전 설 연휴를 앞두고 입에 담기도 어려운 일이 벌어졌다. 이른바 개를 대상으로 수간하는 동영상 파문이 바로 그것이다. 왜 이같은 영상을 SNS에 올려놨는지, 시쳇말로 ‘철없는 자랑질’인지, ‘일그러진 존재감의 확인’인지, 그들의 뇌구조를 가늠조차 하기 어렵다. 엽기적인 이 사건에 대해 경찰의 수사가 진행 중이라지만, 그저 한숨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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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람의 탈을 쓴’ 이들을 일컬어 ‘인비인(人非人)’이라 부른다. 인간의 형태만 하고 있을 뿐 인간이 아닌 것이다. ‘인비인’ 외에 달리 표현할 방법도 없다.
보통사람으로 살아가기도 쉽지 않다고 말하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인간의 도리라는 게 있지 않은가. 모두가 깨달음을 얻기 위한 구도의 길을 선택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보통의 삶은 지향해야 한다. 바로 주변을 배려하는 마음가짐이 그것이다.
놀이동산에서 동물의 탈을 쓰고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는 사람이 있는 반면, 사람의 탈을 쓰고 참담함과 혐오감만 안겨주는 사람도 있다. 아무리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고 하지만 너무도 대조적인 현실이다. 그래도 우리에게 위안과 희망을 주는 것은 이웃을 사랑하고 동물을 가족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이다.
‘인비인’의 출현을 최소화하고, 취약계층의 사회안전망 확보와 동물학대 처벌 강화를 위한 법과 제도의 정비는 시급히 해결돼야 할 과제이다. 그늘진 곳을 돌보고, 정서적 교육을 함양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도 마련돼야 한다. 참으로 갈 길이 먼 세상이다.
이제 계절적으로 입춘이 지났다. 얼음이 풀리고, 개구리도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우수, 경칩도 눈앞이다. ‘사람의 탈만 쓴’ 이들에게도 변화의 봄바람이 스며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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