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 때 일이다.
부모님은 개를 좋아하는 아이들을 위해 당시 보기 힘들었던 요크셔테리어와 푸들 한 마리씩을 사셨다.
요크셔테리어(이하: 요키)의 이름은 '엔짱'이었는데, 일본에서 태어나서 성견으로 자랐다.
엔짱은 그 후 우리집에서 키웠던 많은 요키들의 출발점이 되었다.
필자의 아내 대학선배가 키웠던 요크셔테리어 포미 |
그런데 요키 엔짱은 정말 예상외의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쥐잡이 실력이었다.
아시다시피 요키는 영국의 탄광이나 공장 지대에서 쥐를 잡는 용도로 개발된 전문 쥐 사냥개(ratter)이다.
하지만 애견으로 그 용도가 전환된 20세기 중반 이후 쥐 잡이 목적으로 이 개를 키우는 사람은 세계적으로도 거의 없어졌다.
필자의 집에서도 쥐 잡이 용도로 요키를 구한 게 아니어서 이런 능력은 가족 모두에게 의외의 선물이었다.
21세기에 접어든지 이미 오래된 2016년도 대한민국 국민의 입장에서는 이해가 안가는 이야기지만, 1980년대 대한민국 수도 서울시민들은 아파트보다 단독주택에서 더 많이 살았다.
많은 시민들은 쥐 퇴치 때문에 고민하였으며, 영리한 쥐들은 쥐덫이나 쥐약을 피해가며 자신의 활동범위를 넓혀갔다.
그러던 어느 날 필자는 따스한 봄볕을 쬐라고 집 앞마당에 엔짱과 푸들 엔지를 풀어 놓았다.
개들은 마당에서 놀고, 필자는 학교 숙제를 방에서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작은 동물의 비명소리 비슷한 이상한 소리가 나서 황급히 문을 열고 밖의 상태를 확인해 보았다.
그런데 정말 의외의 풍경이 필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요키 엔짱이 축 널어진 쥐 한 마리를 입에 물고 있었던 것이다.
푸들은 놀라서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이었다. 그 뒤부터 엔짱은 거의 매일 한 마리 이상의 쥐를 잡아냈다. 엔짱은 마치 사냥본능이 되살아난 정글의 맹수 같았다.
우연히 엔짱의 사냥 장면을 본 적이 있는데, 마치 사자처럼 웅크리고 매복하고 있다가 갑자기 쥐를 급습하여 목덜미를 물어버리곤 하였다.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들은 쥐를 한참 가지고 놀다가 죽이는데, 요키 엔짱은 그런 것이 없었다. 바로 물어서 죽여 버렸다.
어린 필자의 눈에는 엔짱은 사자나 표범 같은 맹수처럼 보였다.
엔짱의 맹활약 덕분에 집에는 쥐가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당시 집 근처에 있던 외가에서는 엔짱의 활약 소식을 듣고 스카웃 제의를 해왔다.
요즘 프로 스포츠 용어로 치면 스카웃이라는 말 대신 ‘한시적인 임대’라는 것이 더 적합할 것 같다. 외가에서는 단 1주일만 엔짱을 데리고 가서 그 집의 쥐들을 소탕하겠다는 것이었다.
엔짱은 외가에 가서도 맹활약 하였다. 외가가 있던 치와와 돌돌이와 함께 5일간 5마리의 쥐를 잡아내는 큰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얘기치 못한 사고가 6일째 되던 날 일어났다. 그 날 새벽 쥐를 추격하던 엔짱은 그만 쥐를 잡으려고 설치했던 끈끈이에 몸이 달라붙는 사고를 당했다.
끈끈이는 먹이를 앞에 두고 쥐의 접근을 유도한 후 강력한 접착제가 붙은 본판으로 쥐를 포획하는 무서운 사냥기구(?)다.
덩치가 작은 쥐의 경우 끈끈이에 붙으면 그것으로 탈출은 불가능해진다. 거미줄과 비슷한 원리이기도 하다.
엔짱은 결국 온 몸에 있는 털을 가위로 다 잘리고 나서 악몽 같은 끈끈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필자가 학교 수업을 마치고 일주일 만에 집에 돌아온 엔짱은 요키 특유의 아름다운 털이 없었다.
용맹한 엔짱은 너무나 놀랐는지, 풀이 죽어서 엎드리고 있었다. 어린 마음에 엔짱의 이러한 몰골 때문에 속이 많이 상했었다.
이후 엔짱은 다시는 외부 원정사냥에 나서지 않았다. 대신 필자의 집에서 자기 새끼들을 낳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면서 천수를 누렸다.
#반려동물 #요크셔테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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