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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병앓는 수의사들..'의사보다 자살 가능성 높다'

미국 수의사 6명중 1명 '자살 생각해본 적 있다'

더 많은 죽음에 노출..안락사도 시행해야

보호자 상대도 만만치 않은 스트레스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수의사 직업을 선망한다. 좋아하는 동물들을 실컷 볼 수 있고, 동물 목숨을 구하는 고귀한 직업이며, 반려동물이 증가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유망한 직종이라고 일반인들은 여긴다. 현직 수의사들은 여기에 동의하지 않지만 말이다.

 

그런데 미국에선 많은 수의사들이 자살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해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미국 일간지 보스턴글로브는 지난달 19일 '왜 수많은 수의사들이 자살을 택할까요"이라는 제목으로 수의사가 자살하는 이유와 그 배경을 보도했다.

 

지난 2014년 미국 연방질병통제센터가 현직 수의사 1만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가 지난해 나왔다. 이 조사에서 수의사 6명 중 1명은 자살을 고민해봤다고 응답했다. 수의사들은 일반인보다 절망감,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2~3배 더 많이 앓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영국 수의사협회가 발간하는 전문지 ‘베테러너리 레코드’에 실린 연구 2편 역시 비슷했다. 수의사의 자살률이 의사와 치과의사보다 2배 이상 높았고, 일반인과 비교하면 4~6배 높았다.

 

이 수치를 보고 평범한 사람은 물론이고 수의사들도 놀랐다. 지난 2012년 미국 수의사협회 이사진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고작 11%만 수의사의 자살 문제를 인지하고 있었다.

 

수의사를 자살로 모는 원인은 반려동물 뿐 아니라 사람이라고 기사는 썼다.

 

지난 2014년 뉴욕 수의사 셜리 코시(여·55세)의 비극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 뉴욕 시민이 공원에서 길고양이를 구조해서, 젠틀 핸즈 동물병원에서 일하는 수의사 코시에게 데려왔다. 몇 주 뒤에 한 여성이 나타나 그 고양이가 자신의 소유라고 주장했다. 공원에서 먹이를 주면서, 다른 길고양이들과 함께 길러왔다는 것이다. 당연히 코시는 거절했다.

 

그러자 그녀는 수의사를 고소했다. 그리고 동물병원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게다가 그녀의 무리들은 수의사의 SNS와 동물병원 홈페이지에 악플을 다는 등 온라인 공격도 가했다. 이를 견디지 못한 수의사 코시는 자택에서 자살 선택했다.

 

반려동물 주인들은 수의사에게 무리한 요구를 해온다. 돌볼 능력이 안 되는 데 유기견이나 고양이를 입양하겠다고 떼쓰는 사람, 건강한 반려동물을 이기적인 이유로 안락사 시키려는 사람, 치료비를 안 내는 사람, 정서장애를 가진 사람 등을 매일 접해야 한다.

 

뉴잉글랜드 동물신경학·통증병리학센터 동물신경학자 스테파니 큐브는 “우리의 고객 대부분은 정말 좋은 사람들이지만, 온갖 사람들이 반려동물을 키운다,”며 “일부는 수의사가 동물을 사랑하기 때문에 무료로 치료해줄 거라고 기대하지만,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고 밝혔다.

 

경제적 어려움도 또 다른 배경이다. 수의대 학비는 의대만큼 비싸기 때문에, 수의사들은 자격증과 막대한 학자금 빚을 동시에 받고 졸업한다. 그런데 버는 돈은 의사의 3분의 1 수준도 안 된다. 동물 치료비가 사람보다 낮고, 의료보험 혜택에서도 소외됐기 때문이다.

 

근무 여건도 열악하다. 동물병원 수익성이 낮은 탓에 근무시간이 길고 업무량이 많은 데다, 응급 상황에 대비해 항상 대기해야 하는 스트레스가 있다.

 

특히 의사보다 더 많은 죽음을 접해야 한다는 것도 심각한 스트레스다. 피터버로 동물병원의 수의사 척 데빈은 동물 수명이 사람보다 짧기 때문에 “우리의 직장생활 동안 우리 환자의 다수가 죽는다”고 털어놨다.

 

게다가 반려동물 주인의 도덕적 딜레마를 상담해야 하는 막대한 부담도 있다. 자녀를 대학에 보낼지, 오랜 시간을 함께 한 반려동물을 수술해줄지 선택해야 하는 주인들은 수의사에게 조언을 구한다.

 

한편 죽음에 무뎌지는 직업병도 있다. 안락사를 수없이 경험하면서, 죽음을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로 인식하게 된다. 게다가 자살할 수 있는 약이 가까이 있다는 것도 문제다.

 

격무와 박봉 그리고 반려동물 주인이 주는 스트레스까지 겹칠 때, 수의사가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보스턴글로브는 수의사의 자살을 방지하기 위해선, 수의사가 자기관리를 철저히 해야 하고, 반려동물 주인이 보험을 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데빈 수의사는 수의사들이 일에만 몰두하지 말고, 취미를 갖는 등 관심사를 다양하게 가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요가, 명상, 악기 연주 등 정신을 수양할 수 있는 취미가 수의사에게 유익하다.

 

큐브 동물신경학자는 수의사의 자살을 방지하기 위해 “대중을 교육하는 것이 첫 단계”라며 동물병원에서 수의사와 직원들이 치료해주는 것에 감사를 표시하라고 조언했다.

김국헌 기자 papercut@inb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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