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추위가 남았다곤 하지만 확실히 날이 따스해졌다. 두터운 외투를 벗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밖에 나가도 썩 춥지 않고, 거리가 생기가 돋는 모습이 금방이라도 꽃봉오리가 터질 것 같은 느낌.
봄기운이 스물스물 느껴지기 시작한다는 것은 겨우내 미뤄왔던 내 마음속이 미션을 해결할 때가 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겨울의 두터운 털옷을 벗어버리고 여름을 대비하는 가벼운 털로 갈아입는 봄 털갈이 시기를 맞이하여, 이번 주말은 큰맘 먹고 ‘냥빨의 날’로 정했다.
고양이는 워낙 스스로 몸단장을 하는 동물이라 강아지처럼 잦은 목욕이 필요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몇 달에 한 번씩은 목욕을 시켜줘야 보송한 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더불어 평소의 몇 배나 되는 털을 뿜는 털갈이 시기에는 한 번씩 목욕을 시켜주는 것도 도움이 된다.
악명 높은 고양이 목욕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 막막한 초보 집사를 위한 간단한 순서 팁을 준다면 다음과 같다.
1. 먼저 발톱을 깎아준다. 실수로라도 긁힐 수 있기 때문에 미리 깎은 다음에 욕실에 들어가야 한다. 나는 아리의 첫 목욕 때 뭣 모르고 긁힌 기다란 허벅지 상처가 아직도 남아 있다.
2. 욕실 문은 일단 닫는다. 대야에 따뜻한 물을 받아 살살 끼얹어 주거나, 샤워기를 몸에 가까이 대고 물을 적셔주는 것이 좋다. 샤워기를 가까이 대는 이유는 물소리를 줄여주기 위해서다. 물 온도는 따뜻하게 느껴질 정도로 맞춰 준다.
3. 고양이 전용 샴푸로 잘 문질러 닦아 준다. 사람 샴푸를 이용하는 것은 NO. 사람과 동물은 피부의 성질이 다르기 때문에 반드시 반려동물 전용 샴푸를 써야 한다. 2인 1조로 할 수 있다면 한 사람이 겨드랑이를 잡아 세우고 다른 사람이 온몸을 깨끗하게 문질러 준다.
4. 샴푸를 물로 잘 닦아낸 다음 수건으로 1차 건조해 준다. 가능하면 드라이기로 싹싹 말려주는 것이 좋지만… 드라이기 사용이 불가능할 만큼 싫어하는 고양이라면 우선 수건 여러 장으로 잘 말리고, 온열기를 켜주는 등 집안을 따뜻하게 해준다.
5. 목욕 후에는 간식으로 불편한 심기를 달래드린다.
목욕을 정말 싫어하는 아리는 욕실에 들어가면 일단 죽는다고 ‘아우우우’ 늑대 소리를 낸다. 아직 아무 것도 안 했는데….
이 고양이는 대야에 물을 받아 몸을 담그게 하면 익사시키는 줄 알기 때문에(……) 욕조 바닥에 내려놓고 샤워기로 물을 뿌려 씻긴다.
내가 지금 무슨 일을 당하는 거냥, 하고 눈이 동그랗게 커져 있는 와중에 물로 축 쳐진 털이 귀여워서 나는 항상 웃어버리고 만다. 고양이는 역시 털빨!
반면 제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나름대로 얌전하다. 집사가 화장실에 갔을 때 고양이가 문 앞에 앉아 기다리는 이유가, 저 끔찍한(……) 물바다에 들어간 집사가 걱정돼서라는데,
늘 화장실 문 앞에서 기다리는 제이는 매번 무사히 빠져나오는 모습을 봐서인지 제법 침착하게 목욕 미션을 끝낸다.
고양이의 목욕에 대해서 여러 가지 가이드가 있으나 고양이를 키우는 일은 결국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배워가는 것인 듯하다. 모든 고양이가 다 물을 질색하는 것도 아니고, 또 어떤 고양이는 배운 대로 해도 유난히 질색을 한다.
내 고양이에게 어떤 방법을 적용시켜야 스트레스를 덜 받고 성공적인 목욕을 해낼 수 있을지는 결국 실전이다. 대신 어느 고양이든, 보송한 털빨이 사라지고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었다고 해서 너무 대놓고 비웃지는 말자. 더불어, 마무리는 간식이 진리다.
박은지 칼럼니스트(sogon_abou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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