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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 에세이] 미처 하지 못한 말

내가 사는 동네는 길고양이가 별로 없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고양이 한 마리가 저녁 시간마다 모습을 드러내더니 마치 반려인과 잠시 외출한 것처럼 걸어가는 사람 곁에 태연하게 붙어 동네를 산책하고는 했다.

 

나는 생선을 싫어해 평소 같으면 절대 손으로 만지지 않는 마른 멸치를 몇 마리씩 집어다가 바치곤 했다. 개냥이 기질이 있던 그 고양이는 내가 부르면 대답까지 하며 다가와 발목을 꼬리로 감았다.

 

 

어느 날, 이게 만약 묘연이라면 받아들이겠다고 혼자 결심한 나는 ‘따라오면 평생 같이 살자’는 굳은 결의를 다지며 쭈그리고 앉아 고양이에게 의사를 물었다.

 

기분 탓인지도 모르지만, 그날따라 고양이도 제법 갈등하는 것처럼 보였다. 평소에는 아파트 입구 안으로는 들어오지 않고 앞에 있는 화단과 길로만 다니던 녀석이, 복도까지 나를 따라와 기웃거리는 것이다.

 

고양이도 내심 나에게 마음이 있는 게 아닐까 싶어 나는 본격적으로 설득을 시작했다. 네가 원치 않는다면 강요는 하지 않을게, 하지만 너만 괜찮다면 난 너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어, 어때?

 

우리는 거의 십오 분가량을 그렇게 서로 마주 보았다. 고양이는 내가 별다른 몸짓을 하지 않았는데도 주춤주춤 몇 걸음을 더 걸어 들어오는가 싶더니 결국 돌아 나가 사라졌다.

 

그 후로도 몇 번을 더 만났지만, 언제부턴지 그 고양이는 나타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갑자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사람을 잘 따라서 누가 데려갔는지, 애초에 이 동네 고양이가 아니었는지, 나는 마음에 걸려 며칠 동안 밤마다 집 앞을 서성거려야 했다.

 

 

사실 사람을 잘 따르는 길고양이는 곤란하다. 세상에는 호의적인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고, 또 호의가 꼭 좋은 결과를 초래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사랑도 때로는 폭력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서로가 같은 마음이 아니라면 결국 마음의 무게가 무거운 쪽이 상처받고 만다. 길고양이에게 그것은 마음의 상처이자 어쩌면 돌이킬 수 없는 신체적 상처일 수도 있다.

 

어디론가 사라진 고양이를 떠올리며 나도 내 주변에 쌓아올린 울타리를 슬그머니 어루만져 보았다. 사람에게 쉽게 마음을 열었던 그 고양이의 성향이 천성인지, 그간 좋은 사람을 만난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길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스스로 자신을 방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모두에게 마음을 꽁꽁 닫는 것은 외롭지만, 쉽게 마음을 여는 것은 위험한 것이다. 고양이에게 그 이야기를 미처 해주지 못한 게, 나는 못내 마음에 걸렸다.

 

박은지 <흔들리지마 내일도 이 길은 그대로니까>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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