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펫] 얼마 전, 밤 10시쯤 거실 책상에 앉아 노트북으로 뭔가를 집중해서 하고 있었다.
남편은 안방 침대에 누워 있었고, 두 마리 고양이들도 각자 좋아하는 자리에 잠들어 있어 집 안은 고요했다.
그때 문득 안방에서 걸어 나온 남편이 거실에 있던 내게 말을 걸었다.
“여보, 나…….” “으허어억!”
조용한 방안에 인기척 없이 울려 퍼진 남편의 평범한 목소리에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거의 비명 비슷한 걸 지르고 말았다.
내가 놀라는 덕분에 남편은 더 놀랐단다. 민망하지만 실화다. 나는 옆에서 누가 말만 툭 걸어도 ‘으아악’ 하고 놀라는 일이 종종 있다.
보통 길에서 “얼굴에 복이 많으시네요” 등으로 말을 걸어오는 분들은 “얼굴에……” 정도에서 벌써 내 비명소리를 듣는다.
예기치 못한 순간에 누가 말을 붙이는 것 자체가 나를 화들짝 놀라게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그들도 놀라서, 본론을 꺼내기 전에 놀라게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부터 한다. (그쯤에서 ‘아뇨, 전 바빠서……’ 하고 퇴장해야 한다.)
아무튼 내가 별거 아닌 일에도 굉장히 크게 놀라는 편이라, 그런 점에서 나는 고양이들의 마음을 잘 이해한다(고 생각한다).
이전에 일명 ‘오이 동영상’이 크게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다.
열중해서 밥을 먹고 있는 고양이의 뒤쪽에 몰래 오이를 가져다 놓는 것이다. 그러면 고양이는 밥을 다 먹고 뒤를 돌아봤다가 오이를 보고 펄쩍 뛰며 깜짝 놀란다.
거의 공중부양하듯 뛰어올라 놀라는 고양이들을 보고 ‘왜 고양이는 오이를 무서워할까?’라고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어 했다.
사실 그 ‘오이 공포증’의 정체는 오이 자체에 대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주변이 안전하다고 생각해 안심하고 밥을 먹고 있던 상태에서, 갑자기 자신의 영역 내에 예상치 못한 물건이 나타나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는 것이다.
즉 오이가 아니어도 뜬금없는 물체에 대해서는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는 이야기다.
고양이들은 때로 쌀쌀맞고 도도해 보이지만 사실 정말 겁쟁이다.
밖에서 ‘쿵’ 소리만 나도, 실수로 무거운 물건을 떨어뜨려도 눈이 동그랗게 커져서 귀를 쫑긋 세운다(호기심 탓도 있겠지만). 겁이 많다는 점만은 나랑 무척 닮았다.
집 안에서 큰 소리가 나지 않도록 나는 평소에 주의하는 편이다. 꼭 고양이 때문이 아니라 나 스스로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남편은 그 동영상을 보더니 우리 고양이들에게도 한번 해보고 싶어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지만, 놀라는 쪽의 기분을 익히 잘 알고 있는 나는 우리 집 안에서 ‘오이 실험’을 금지시켰다.
그럼에도 남편은 얼마 전에 얌전히 간식 먹는 아리의 엉덩이를 톡 건드리는 걸 나에게 들켰다.
“그렇게 고양이를 놀라게 하면 아리가 너만 보면 도망가게 될 거다”라고 저주해서 안 그러겠다는 약속을 받긴 했지만.
고양이가 깜짝 놀라는 모습은 물론 귀엽지만, 고양이 입장에서는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
좋은 캣타워와 사료를 사주는 것도 좋지만 정서적 안정만큼 중요한 게 있겠는가.
고양이들과 우다다를 할지언정, 방심하고 있는데 깜짝 놀라게 하는 장난은 당하는 입장에선 정말 괴롭다.
결국 집사의 행동이 고양이의 성격을 만드는지도 모른다.
박은지 칼럼니스트(sogon_abou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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