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 비상등이 켜졌다. 보건당국의 초기대응 실패로 메르스가 확산하고, 그 영향이 사회전반으로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은 방문을 취소하고, 많은 학교도 문을 닫았고, 닫을 조짐이다. 공연과 축제 등 각종 행사들도 줄줄이 취소 또는 연기되고 있다.
최근의 상황은 마치 중동 우화 가운데 하나인 ‘텐트 속의 낙타 코(The camel’s nose in the tent)’ 란 이야기를 떠올리게 만든다. ‘텐트 속의 낙타 코’ 얘기는 ‘자칫 방심하다가는 큰 낭패를 겪을 수도 있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낙타의 영민함이 반영된 얘기이기도 하다.
이 우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주인과 동행하던 낙타가 사막에서 노숙을 하게 되었는데, 낙타가 밤 추위를 견디기 어려워 처음에는 코만 텐트 속에 넣게 해달라고 주인에게 간청한다. 주인은 이 부탁을 들어준다. 그러자 낙타는 곧이어 머리까지 허용해 달라, 발도 넣게 해 달라, 계속된 요구를 하면서 결국 몸 전체를 텐트 속으로 들이민다. 결국 주인은 텐트 밖으로 쫓겨나 주객이 전도된다는 얘기다.
달리 말해, 첫 단추를 잘 못 끼우면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것이다. 마치 한줌의 눈이 언덕을 굴러 내리면서 커다란 눈덩이로 변하는 ‘스노우 볼 효과’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저수지를 무너 뜨린 조그만 구멍이라고 해도 좋다.
한때, ‘낙타 코 예산'이라는 말이 쓰였다. 큰 돈이 들어가는 대형 사업을 추진할 때, 반대 여론을 의식해 처음에는 조사비 또는 타당성 검토비 등의 명목으로 푼돈 예산을 편성한 뒤, 해가 갈수록 예산을 늘려가는 ‘잔머리 편성’을 빗댄 말이었다.
낙타의 콧물과 체액에 의해 전파된다는 메르스가 국내에서 퍼져 나가는 양상과, 이를 수습하겠다는 보건당국의 대응수준은, 코만 넣겠다던 낙타의 몸뚱이 전체를 받아들인 주인과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다.
보건 당국의 대응과 위기관리 능력에 대해서는 딱히 더 보태고 뺄 말도 없다. 오죽했으면 ‘시민의식의 발현’만이 이번 사태를 극복하는 최선의 방법이란 얘기마저 나오겠는가.
그저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어’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 머릿속을 맴돈다. 그래서 가슴이 아프다. 대다수 국민이 느끼는 감정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누군가는 낙타처럼 느린 대응이라고 보건당국의 대응책을 비꼬았지만, 이제라도 낙타의 영민함을 배워보길 권해본다.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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