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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그 친척들] 길고양이 학대는 어불성설(語不成說)

[노트펫] 최근 호주는 창궐하는 쥐 떼 때문에 막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 오죽하면 일부 농민들이 농사를 포기할 것을 고민할 지경이라고 한다. 참다못한 당국은 독극물로 쥐의 개체수를 조절하는 것도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또 다른 재앙을 부를 수 있다.

 

쥐를 먹이로 삼는 다양한 맹금류나 대형 육식 어종의 생존에 자칫 치명적인 위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쥐를 잡기 위한 노력이 다른 동물의 멸종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앞으로 가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뒤로 갈수도 없는 진퇴양난(進退兩難)의 상황이다.

 

쥐는 농부가 힘써 만든 식량을 축낸다. 곡물을 탐하는 쥐의 식욕 앞에 창고를 지키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탈탈 털리는 것은 인류 역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앞니가 맹렬하게 자라는 쥐는 잠시도 가만히 있질 못한다.

 

뭐라도 갉아야 직성이 풀린다. 비누, 전선, 나무 기둥 등 뭐하나 성하게 남는 게 없다. 이 정도 물적 피해로 그치면 좋으련만 쥐는 더 심각한 피해도 준다. 전염병까지 옮기기 때문이다. 이런 성가신 동물이 있을까 싶다.

 

쥐는 왕성한 식욕과 폭발적인 번식력 그리고 뛰어난 환경적응 능력을 갖춘 힘든 도전자다. 한두 마리 없어진다고 해서 전체 개체 수에는 미동도 생기지 않는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이 세상에는 쥐의 개체수를 통제할만한 사냥꾼은 거의 없다. 하지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쥐 사냥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실력자는 크게 두 부류다. 한 부류는 밤하늘의 지배자인 올빼미와 부엉이다. 또 다른 한 부류는 익히 알려진 설치류 사냥꾼인 고양이다. 만약 이런 포식자들의 개체수가 충분하면 쥐는 더 이상 마음 놓고 생활하기 어렵다.

 

ⓒ노트펫
흰올빼미는 소형 포유동물에게 저승사자다. 2018년 5월 텍사스 XIT박물관 촬영

 

 

팜 벨트(farm belt)는 미국 농업 중심지다. 필자가 살던 미주리도 팜 벨트의 구성원이다. 그곳에는 쥐도 많고 쥐를 먹이로 삼는 맹금도 많다. 맹금의 먹이를 알기 위해서는 배설물을 분석해야 한다.

 

어느 날 필자의 막내가 귀가하며 멸균 처리된 작은 동물의 뼈를 가지고 왔다. 쥐의 뼈였다. 수의대학생들이 생물수업 시간에 올빼미가 쥐를 먹고 배설물을 통해 그 잔해를 남긴다면서 나누어준 것이다.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생물 수업인 것 같았다.

 

ⓒ노트펫
올빼미의 배설물. 대부분은 쥐의 잔해다. 2018년 5월 촬영

 

 

참고로 올빼미와 부엉이를 엄격하게 구분하는 우리와는 달리 서양인들은 두 맹금을 거의 구분하지 않는다. 그냥 아울(owl)일 뿐이다. 눈동자의 색깔 같은 신체적인 차이는 무시한다. 그러니 막내가 집에 가지고 온 것은 올빼미의 것인지, 부엉이의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지상에서 쥐의 개체수를 조절하는 존재는 고양이다. 고양이는 쥣과동물 사냥에 특화된 포식자다. 체구나 민첩성에서 고양이만큼 쥐 사냥에 적합한 포식자는 없다.

 

얼마 전 우연히 길고양이를 학대하지 말자는 내용의 현수막을 보게 되었다. 여러 생각이 떠올랐다. 호주의 쥐 피해 소식은 물론 어린 시절 필자의 동네에서 구서(驅鼠) 능력으로 명성을 날렸던 나비도 생각났다.

 

그러다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쥐가 거의 보이지 않는 한국의 길을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눈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쥐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낮에도 거리를 활보하는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의 사정은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

 

ⓒ노트펫
“길고양이를 학대하지 말자”는 현수막. 2021년 5월 촬영

 

그런 상황 모두를 길고양이 덕분이라고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음식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않는 한국의 높은 시민의식과 거리의 위생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지자체들의 공이 크기 때문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길고양이들이 거리의 무법자인 쥐를 소탕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그러니 그런 소중한 동물인 길고양이를 학대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앞뒤가 맞지 않는 어불성설(語不成說)인 셈이다.

 

이강원 동물 칼럼니스트(powerranger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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