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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와 빠루] 할아버지의 호랑이 귀신 이야기

[나비와빠루] 제 7부

[노트펫] 1970년대는 지금은 당연시하게 여기는 것들 상당수가 존재하지 않았다. 손가락만 있으면 모든 것을 즐길 수 있는 스마트 폰이나 24시간 내내 심심할 겨를이 없이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케이블 TV는 상상조차 어려운 문명의 이기(利器)였다. 하지만 문화 콘텐츠에 대한 아이들의 갈증을 풀어줄 수 있는 콘텐츠 제공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궁하면 통하는 법이다.

 

지금과는 달리 당시는 삼대(三代)가 같이 모여 사는 대가족이 많았다. 필자 집도 그랬다. 철없는 손자는 시간만 나면 할아버지에게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랐다. 할아버지는 마르지 않는 우물, 24시간 방송 라디오와 같았다. 그 이야기 보따리는 결코 고갈되지 않았다.

 

하루는 나비가 쥐를 입에 물고 다녔다. 나비는 평소 쥐를 잡으면 사람들의 출입이 빈번한 현관 앞에 두곤 했다. 그날도 그랬다. 자신의 사냥 실력을 과시하는 것 같은 행동이었다. 나비를 보다가 “쥐를 사냥하는 나비는 고라니를 잡는 호랑이를 생각나게 한다.”고 했다. 할아버지로부터 호랑이 얘기가 듣고 싶으면 일부러 호랑이라는 단어를 말하곤 했다.

 

ⓒ노트펫
고라니를 물고 가는 호랑이(박제), 2014년 국립생태원에서 촬영
 

그런데 그날 할아버지가 꺼낸 것은 특이한 주제였다. 처음 듣는 얘기였다. 할아버지가 이야기 꺼리가 부족하면 ‘전가의 보도(傳家寶刀)’처럼 꺼내는 ‘강원도 호랑이 이야기’는 이미 몇 번 들어서 더 이상 재밌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이야기는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할아버지가 한 얘기는 강원도 산골에서 대대로 구전되는 내용이었다.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어릴 적 들었던 이야기라 기억이 부족한 부분은 아버지의 도움을 받았다.

 

호랑이는 범접할 수 없는 영험한 동물이다. 엄청난 힘과 영리함을 같이 갖추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산골 사람들은 호랑이를 ‘산의 임금’이라는 뜻을 가진 ‘산군’(山君)이라고 불렀다. 평소 호랑이는 배가 고프면 멧돼지나 고라니 같은 산짐승들을 잡아먹는다. 하지만 산에 정말 먹을 게 없으면 다른 선택을 하기도 한다. 이는 궁여지책(窮餘之策)과 같은 일이다.

 

호랑이는 사람을 먹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 행동인지 잘 안다. 그것은 자기 목숨을 내놓고 사는 일이다. 만약 산에 사는 호랑이가 사람을 수시로 잡아먹는 ‘식인 호랑이’라는 소문이 쫙 퍼지면 솜씨 좋은 포수나 군인들이 들이닥칠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안다.

 

사람도 며칠 굶으면 남의 집 담벼락을 넘듯이 호랑이도 배고픔을 견디지 못한다. 뱃가죽이 등에 닿을 정도가 되면 산을 넘는 사람을 공격한다. 그런데 호랑이 밥이 된 사람은 죽어서도 그 신세가 처량하다. 그런 사람의 영혼(靈魂)은 다른 사람의 혼과 달리 저세상(저승)으로 쉽게 가지 못한다. 이유는 살아있는 호랑이의 노예 신세가 되기 때문이다.

 

노예를 면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호랑이가 죽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을 호랑이 먹잇감으로 데려오는 것이다. 호환을 입은 사람의 시신을 수습하면 흙에 묻지 않고, 그 위에 돌을 쌓았다. 이는 돌 무게 때문에 귀신이 밖에 못나오게 하기 위함이었다.

 

여기까지 들었더니 슬슬 밤이 걱정되었다. 당시 집의 화장실은 실외에 있었다. 밤에 자다가 소변이 마려우면 큰일이었다. 호랑이 귀신이 나타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계속 이야기를 한다. 재미는 있지만 더 듣다가는 큰 일 날 것 같았다. “할아버지 제발 그만요”  

 

*동물인문학 저자 이강원(powerranger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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