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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와 빠루] '직업적인 개 절도꾼', 맹견의 천적

[나비와빠루] 제 23부 


[노트펫] 사자와 호랑이는 육중한 체구와 놀라운 유연성을 가진 최강의 사냥꾼이다. 반면 늑대는 수십 마리가 엄격한 규율에 따라 마치 한 몸 같이 집단을 이루며 막강한 힘을 과시하며 생태계를 지배한다.

 

최상위 포식자(Apex predator)는 다른 야생동물들에게는 도무지 극복할 수 없는 '하늘이 내린 적' 천적(天敵)이다. 천적은 죽음을 상징하는 저승사자와 같다. 그러니 만나는 즉시 삼십육계 줄행랑을 치는 게 최선의 선택이다.

 

ⓒ노트펫
아프리카물소를 공격하고 있는 사자들. 2018년 3월 스미소니언박물관에서 촬영

 

초등학교 시절, 같은 반 친구의 집에는 호랑이와 맞붙어도 이길 정도로 큰 개가 있었다. 맹견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개였다. 친구는 필자에게 그 개를 보여주며 “이 개가 있어서 너희 집과 달리 우리 집은 도둑 걱정이 없다.”면서 뽐내기도 했다.

 

기분은 나빴지만 사실이었다. 우리 집의 스피츠 빠루는 체구가 작아서 도둑을 막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친구의 자신만만함은 큰 오산이었다. 의외의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날 아침도 평소와 같은 평범한 아침이었다. 교실에 들어서며 친구들에게 큰 소리로 “안녕”하고 인사를 했다. 다들 “안녕”하고 대답했지만, 한 친구는 무응답이었다. 대신 책상에 엎드려서 울고 있었다. 큰 개를 키우는 바로 그 친구였다.

 

할 수 없이 다른 친구들에게 영문을 물어보았다. 전혀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놀랍게도 어제 낮에 살짝 열린 대문을 열고 도둑이 들어서 개를 훔쳐갔다는 것이었다. 가능한 일인지 의아스러웠다. 친구에게 뭐라고 위로할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냥 가만히 있는 수밖에 없었다.

 

점심 먹을 때 친구의 얼굴을 힐끗 쳐다보았다. 얼굴은 어제와 달랐다. 얼마나 울었던지 눈은 새빨갛게 충혈 되었고, 그 주변은 온통 퉁퉁 부어있었다. 방과 후 손자의 눈에는 만물박사와 같던 할아버지에게 도둑이 친구 집 개를 훔쳐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도둑이 어떻게 큰 개를 훔쳐갔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할아버지는 손자의 이야기를 다 듣고, 이번 사건을 벌인 도둑을 ‘직업적인 개 절도꾼’이라고 정의 내렸다. 도둑은 전문 분야가 있는데, 친구 집에 든 도둑은 개를 전문 절도 대상으로 삼는 '개 도둑'이라는 것이다. 그때 절도(竊盜)라는 어려운 한자어를 처음 들었다. 하지만 대략 무슨 뜻인지는 알 것 같았다. 할아버지의 분석은 계속됐다.

 

"개 절도꾼의 몸에서 나는 이상한 냄새는 제 아무리 맹견이라고 해도 두려워하는 냄새다. 도둑이 친구 집에 왔을 때는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주인이 없는 낮에 이상한 냄새를 풍기는 도둑이 들어오니 개가 겁먹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 상태가 되면 아무리 큰 개도 마치 치와와와 같은 존재가 된단다."

 

ⓒ노트펫
고라니를 물고 있는 호랑이. 2014년 1월 국립생태원에서 촬영

 

그러면서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사냥꾼에게 들었던 얘기를 해주셨다. "호랑이나 늑대 같은 맹수를 만나면 초식동물들은 줄행랑을 친다. 하지만 일부 동물들은 공포에 사로잡혀 다리가 굳고 몸만 덜덜 떨기도 한다. 그러면 맹수는 힘들게 사냥할 필요가 없어진다." 할아버지의 얘기를 들으니 친구 집의 개도 그와 비슷한 상황에 빠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건이 벌어지기 며칠 전 대문을 제대로 닫지 않고 친구네 집에 놀러간 적이 있었다. 나중에 할아버지에게 크게 혼났다. 할아버지는 그 일을 다시 꺼냈다. "개에게는 '개 도둑'이 그런 천적이다. 마당에서 놀고 있는 강아지 빠루에게 호랑이를 소개시켜줄 뻔 했잖니.”

 

할아버지의 말씀에는 날카로운 가시나 뼈가 숨어있는 것 같았다. 나중에 알았다. 그런 말을 언중유골(言中有骨)이라고 한다는 것을.

 

*동물인문학 저자 이강원(powerranger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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