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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와 빠루] 할아버지를 소환시킨 황금 개털

[나비와빠루] 제47부

 

[노트펫] 봄은 겨우내 얼어붙었던 자연을 해방시킨다. 얼마 전까지 동토였던 대지에 봄은 갖은 색깔과 꽃향기를 불어 넣는다. 만물은 봄바람에 소생하고 화려함을 더한다. 하지만 봄의 전성기는 지극히 짧을 뿐이다.

 

조금만 움직여도 몸이 축축해지는 옷이 달라붙는 여름이 바로 찾아오기 때문이다. 열흘 동안 계속 붉은 꽃은 없다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고사가 있다. 봄은 바로 그런 계절이다.

 

요즘 같은 초여름의 날씨 변화는 예상하기 어렵다. 배팅 박스에 선 평범한 타자는 명투수가 던진 낙차 큰 슬라이드의 움직임을 알기 어렵다. 그저 헛스윙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런 날씨가 연속된다. 일기예보가 없던 시절 같으면 비 맞은 생쥐 꼴이 되기 십상이다.

 

초여름 날씨의 특징은 “대기가 불안정하다.”는 말로 정의할 수 있다. 조금 전까지 화창하게 맑았던 하늘에 금방 먹구름이 끼며, 강풍을 동반한 비가 내린다. 물론 구름만 잔뜩 끼고 바람만 불수도 있다.

 

어제 그제 날씨는 그렇게 종잡기 어려웠다. 마치 20분 단위로 하늘의 표정이 달라지고, 비와 바람의 움직임이 변하는 것 같았다. 그제 오전이었다. 파랗던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곧 비가 내린다는 신호였다.

 

마침 편의점에서 사야할 것이 떠올랐다.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나섰다. 급히 나서느라 우산도 챙기지 못했다. 그저 발걸음을 재촉할 뿐이었다. 다행히 비는 아직 오지 않았지만, 바람은 강하게 뺨을 스쳐갈 정도로 위력을 더해갔다.

 

편의점 가는 길에 강풍의 힘에 못 이겨 바닥에 있던 낙엽과 검은 비닐봉투 같은 것이 하늘로 치솟았다. 미국에 살 때 보았던 토네이도(tornado)의 축소판 같았다. 그런데 바로 그 때 골든 리트리버(Golden Retriever)의 것으로 보이는 황금색 털 뭉치가 보였다. 개털이 그렇게 높이 솟구치는 광경은 처음이었다.

 

골든 리트리버의 것으로 추정되는 개털뭉치. 2022년 6월 촬영
골든 리트리버의 것으로 추정되는 개털뭉치. 2022년 6월 촬영

 

물건을 구입하고 편의점을 서둘러 나왔다. 편의점 옆에는 아르바이트생의 것으로 보이는 자전거 한 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조금 전 하늘을 날던 개털이 자전거 바퀴에 걸려 있었다.

 

털 뭉치의 주인이 누군지 대충 알 것 같았다. 동네에는 매일 같이 골든 리트리버를 인근 공원에 데리고 와서 빗질하는 분이 있다. 애석하게도 견주는 빗질로 바닥에 떨어진 개의 털을 치우지 않는다. 치우면 좋으련만 그렇게 하진 않는다. 그 분이 가면 바닥에 개털이 수북하다.

 

공원 바닥에 떨어진 그 개의 털을 보면서 한 번은 오래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할아버지는 마당에서 스피츠 빠루를 매일 아침 빗질했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빠루의 털을 치웠다. 떨어진 개털은 보기도 좋지 않고, 털이 날리면서 위생상 문제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소아천식을 앓던 손자가 개 털 때문에 문제라도 생길 것을 우려했다.

 

편의점에서 쇼핑을 마치고 나오니 바깥에는 강풍이 다시 불기 시작했다. 자전거 바퀴에 붙어있던 개털은 이미 다른 곳으로 가버린 것 같았다. 이번에는 정말 빗방울이 떨어질 것 같았다. 걷지 않고 뛰는 게 좋을 것 같은 하늘이었다. 깔끔한 성격의 할아버지가 생각나는 하루였다. 

 

*동물인문학 저자 이강원(powerranger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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