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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와 빠루] 족제비가 앗아간 할아버지의 행복

[나비와빠루] 제 57부 

 

 

[노트펫] 얼마 전 저녁에 귀가하다가 아파트 단지 안에서 족제비를 보고 깜짝 놀랐다. 살아있는 족제비를 도심에서 목격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리고 며칠 뒤 족제비가 도시에서 종종 출몰한다는 방송 뉴스도 보았다. 뉴스를 보다 40여 년 전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문득 생각났다.

 

초등학교 1학년 시절, 당시 필자는 반찬 투정을 심하게 했다. 어머니는 그런 까다로운 아들 때문에 아침마다 언성을 높였다. 심지어 계란 노른자의 익힘 정도 때문에 밥을 안 먹겠다고 소리 지르다 혼난 적도 있다.

 

예나 지금이나 좋아하는 계란 프라이는 써니 사이드 업(sunny side up)이다. 이 요리는 노른자가 햇살처럼 솟은 아름다운 모양이 시각적으로 아름답다. 그리고 고소한 맛은 사라진 식욕까지 자극할 정도로 고소하다. 보기도 좋고 맛도 좋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필자가 만든 써니 사이드업, 2022년 8월26일 요리
필자가 만든 써니 사이드업, 2022년 8월26일 요리

 

하지만 어머니가 좋아한 것은 완전히 다른 방식의 것이었다. 노른자는 완전히 익어야 좋다는 게 타협 불가능한 어머니의 지론이었다. 그래서 프라이팬 주걱으로 노른자를 꾹꾹 눌러 다 터트리고 익혔다. 예쁘지도 않고 고소하지도 않았다. 턴 오버 에그(turn over egg)였다.

 

계란의 익힘 방식으로 인한 갈등은 누가 옳고 틀린 문제가 물론 아니다. 식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가치관의 충돌이었다. 모자(母子)가 매일 아침 계란 때문에 티격태격하니 결국 할아버지가 중재에 나섰다. 자신의 옛날 얘기를 하시면서 슬기롭게 갈등을 조정해 주셨다.

 

1940년대 후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뱃속의 태아까지 치면 네 명이나 되는 자녀를 키웠다. 어려운 시절, 애들을 굶기지 않고, 세끼 밥을 차리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일소 누렁이와 함께 매일 아침 들판에 나가서 날이 어두워지면 집에 돌아왔다. 뼈 빠지게 할아버지가 농사일을 한 덕분에 가족들의 배를 고프게 한 일은 없었다.

 

하지만 사람이 밥만 먹고 건강을 유지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할아버지는 아이들이 키 크고, 몸도 튼튼하게 하기 위해 단백질을 정기적으로 공급하기로 결심했다. 현실적인 방법은 닭을 키우는 것이었다. 마당 한 편에 닭장을 만들고, 아침마다 1인당 한 개씩 구워 주었다.

 

그게 할아버지의 가장 큰 일상의 행복이었다. 철저한 할아버지의 성격은 닭 모이에서도 나타났다. 닭의 건강을 유지해야 좋은 달걀을 낳을 수 있다고 보고, 벌레를 잡아 닭에게 주었다. 닭이 좋은 것을 먹어야 양질의 달걀을 낳을 수 있다고 할아버지는 생각했다.

 

텍사스의 한 박물관에서 만난 검은발 족제비(박제, 좌측), 2018년 5월
텍사스의 한 박물관에서 만난 검은발 족제비(박제, 좌측), 2018년 5월

 

그러던 어느 날 밤, 족제비가 인근 산에서 내려와서 절반에 가까운 암탉에게 해코지한 사건이 일어났다. 닭의 비명 소리에 급히 일어난 할아버지가 마당에 나가는 바람에 그나마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그날 이후 할아버지는 닭 우리를 범이 내려와도 부수지 못할 정도로 튼튼하게 만들고, 얼마 전에 이웃집에서 태어난 진돗개 강아지 한 마리도 데리고 왔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신 할아버지는 손자를 빤히 쳐다보며 젓가락으로 노른자가 익은 계란 프라이를 가리키며 “그래서 한동안 달걀이 부족해서 가족들은 계란을 매일 먹지 못했다”고 하셨다. 다음날부터 계란의 익힘 때문에 어머니에게 결코 항의하지 않았다. 물론 마음속으로는 잊지 않았다. “어른이 되면 반드시 보기 좋고 고소하게 먹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동물인문학 저자 이강원(powerranger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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